INTERVIEW: 권나무
2010년대 중반부터 인디 포크계의 확실한 주목을 받으며 평단과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싱어송라이터 권나무가 3집 [새로운 날](2019)이후 6년 만에 새 앨범 [삶의 향기]를 들고 돌아왔다. 어쿠스틱 기타와 수수하면서도 자신이 바라본 삶의 시선들을 차분하고 분명하게 들려주는 그의 음악이 새 앨범에서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배경과 과정, 결과물의 이야기를 지난 9월 망원동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 함께 나눠보았다.
인터뷰 진행, 정리 김성환
사진 권나무

6년 만에 정규 4집 [삶의 향기]를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3집 발표 이후 4집이 발표될 때까지 이번에는 6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인지 혹시 물어봐도 될까?
권나무: 2019년 1월 1일에 정규 3집을 발매한 후 아들과 딸이 태어나고 음악 외에도 하고 있던 일들에 변화가 컸던 시기라 여러 가지 막연함들 속에서 마음이 바빠지기도 했다. 그간 나름 공연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고 틈틈이 곡 작업들도 해왔지만, 내 기준에선 앨범으로 묶어낼 만큼 숙성되지 못했다는 성찰 속에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어떤 때가 되자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곧 그간의 작업들을 정리해 꺼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앨범을 다 완성하고 난 이후의 소감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권나무: 막상 완성하고 나니까 내 노래 가사의 표현처럼 ‘환멸의 비애’ 같은 게 느껴졌다. 일종의 쓸쓸함 같은 것? 한편으로는 안심도 됐다. 3집 이후에 만족스러운 곡이 안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삶의 변화가 생기면서 어쩌면 앨범 자체를 못 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이나 그간 지켜오고자 했던 태도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이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렵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앨범을 내고 나니 마치 등산을 마쳤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올라갈 때 힘들지만 열심히 올라가서 어떤 풍경에 도착했다는 느낌. 물론 단지 어디론가 향해 걸었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어떤 정도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목적은 명확한 상태에서 말이다.
신보에 관해 얘기하기 전에 잠시 뮤지션 권나무의 성장 과정의 궁금한 부분을 몇 가지 묻고 싶다. 처음 가수(보컬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 했는가? 그리고 대학 시절에 헤비메탈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했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그 시절의 경험이 뮤지션으로서 자신에게 주었던 영향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
권나무: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대학 때 동아리로 밴드를 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밴드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소위 ‘록 음악’도 관심을 두게 되고, 늦게나마 음악의 홍수 속에 살면서 내가 좀 달라졌다. 그 시절 동아리 선배들이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이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음악을 강요하는 느낌도 받아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선배들의 순수한 열정과 그 메시지 등은 오해하지 않고 다 받았던 것 같다. 누가 어떤 아티스트가 최고라고 주장하면, ‘뭐가 그리 최고가 많은 건데?’라고 하면서도 집에 가서는 찾아 들어보게 되고, 그중에 와닿는 것도 있었고, 왜 좋은지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아도 계속 들어보는 경험을 하면서 ‘음악은 정말 다양하구나, 그리고 달라도 재밌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음악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타인을 보는 태도, 사회를 보는 태도와 같은 것들이 (그 시기에)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물론 그때의 밴드 생활은 결국 커버곡을 연주하는 정도였는데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음악적으로 꿈틀거리는 부분이 생긴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선물로 받아서 갖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동요 같은, 악곡으로는 정말 단순하고 볼품없기도 한 곡들을 쏟아내듯 만들게 되었다.
그러면 자신의 곡을 처음 직접 쓰게 된 것은 언제쯤이었나? 그때 처음 쓴 곡은 어떤 곡인지 궁금하다.
권나무: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말아요’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그냥 단순한 리듬에 포크와 동요 사이 정도의 곡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음악가라는 또 하나의 커리어를 함께 이어가고 있다. 두 가지 일을 모두 챙기며 관리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병행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게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권나무: 타인들은 욕심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충분한 설명은 아닌 것 같다. 욕심만으로 하는 일은 오히려 많이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난 내가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직업적으로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굳이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주어지고 펼쳐져 있는 대로 해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두 가지 일이 모두 좋다.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 두 가지 일 모두 내가 ‘끌려서’ 시작한 것이고, 그 끌림이 아직도 작동하기에 처음과 달라진 건 사실 없다. 감사한 일이다. 굳이 (두 가지 일을) 계속 동시에 하게 하는 원동력을 말하자면, 어쩌면 이제 나는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둘 다 못할 것 같다는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너무도 생생한 즐거움과 예술적 장면을 발견케 하는 때가 많고, 다소 게으르기도 한 나는 출퇴근을 하는 직장을 갖고 있기에 삶에 리듬이 생기기도 한다. 창작을 통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나 자신에게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무대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받는 에너지와 감사함, 예술의 영역에서 아름다운 창작을 해내는 분들과의 교류와 교감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귀한 일이다. 그 덕분에 학교에서의 생활도 더 잘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 속에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 중의 하나만 있다면 무한정 게을러져서 음악을 제대로 못해내거나 아니면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학교 일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때로는 두 가지가 모두 부대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미 이렇게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이상 더 이상의 구분은 무의미한 상태가 되었다 해도 좋겠다.
처음에는 직접 집에서 제작한 음반을 팔면서 공연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EBS 헬로루키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디 레이블과 계약하고 첫 정규작 [그림]을 발표하면서 더 많은 인디 음악 팬들, 포크 음악 팬에게 주목받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고, 수상까지 하게 된 당시의 감정이 어땠었는지 들어보고 싶다.
권나무: 당시의 마음을 조금 과장해 표현한다면 ‘꿈이 아닐까?’라고 할 정도였다. 이전까지 세상이 내게 그렇게 호의적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랑 같아서 자세히 말한 적은 별로 없지만 사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 스페이스 공감에서 전화가 왔을 때, 처음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연락이 왔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가능한 것인가 생각했다. 내가 즐거워서 열심히 음악을 한 건 맞지만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에게까지 이렇게 손길이 닿고 이런 평가를 해주는지 너무 놀라웠고,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의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에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한편으론 당시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행복하지만 조금은 두렵기도 한. 낯설고 환한 문이 활짝 열리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런 순간은 생에 다시 안 올지도 모르니 한번 느껴본 것만 해도 축복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간 총 3장의 앨범을 통해서 꾸준히 ‘포크의 정석’과 같은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음악을 발표해왔다고 생각한다. 그간 발표했던 곡들 가운데 (이번 4집을 제외하고)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을 앨범마다 한 장만 골라서 그 이유와 함께 말해준다면? (꼭 타이틀곡이 아니어도 된다.)
권나무: 진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음악적 취향은 다 떠나서 그 곡들의 의미만 놓고 말해보고 싶다. 1집에선 ‘밤하늘로’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내가 집 밖으로 걸어나가 나름 대로의 용기로 씩씩하게 불러본 첫 곡이기 때문이다. 관객들도 없는 작은 광장이지만 뻥 뚫린 곳에서 세상 어떤 곳으로 노래를 멀리 보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불렀다. 2집에서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을 골라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슬펐던 날에 만든 노래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 있는데 그 땐 그랬다. 이 곡을 만든 후에도 그 감정이 도대체 정리가 안 되어 만든 곡이 2집의 타이틀 곡이 된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였다. 어떤 선언을 통해 끝맺음이 필요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감정들이 너무 괴롭고 아팠던 것 같다. 한편, 3집으로 가면 참 고르기 어렵지만 ‘LOVE IN CAMPUS’를 선택하겠다. 그간의 작업들 중 스케치를 끝내고 데모를 딱 만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곡이다. 혼자서 ‘내가 근사한 노래를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기분이 매우 강렬했다.
3집 [새로운 날]의 사운드가 그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스케일이 큰 편곡을 보여준 작품이었다면 이번 4집 [삶의 향기]는 정확하게 보컬-기타-피아노라는 미니멀한 편곡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느낌일까? 그 이유를 묻고 싶다.
권나무: 나도 이 부분을 가장 잘 설명하고 싶었는데, 질문해 줘서 감사하다. 권나무의 (음악적) 첫 번째 시기는 1집부터 3집까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증법에 대입하자면 1집이 ‘정’이고, 2집은 1집에 대한 ‘반’이었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3집에서는 ‘합’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전의 작업들이 갖는 일관된 성격과 방향성을 유지한 채 색채성을 조금 더 다채롭게 키워 품을 넓혀보고자 하였다. 특히 기존과 같이 타악기를 배제하는 방식이나 멜로디의 서정성을 유지하면서 힘 있는 가사의 호응을 지켜가고 싶었다. 내 기준에서는 세 장의 음반이 하나의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4집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 앨범이 관념적으로 어떤 위상에 놓일 수 있을까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 생각의 종착점은 네 번째 앨범이 평면에서 입체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1~3집이 각자의 꼭짓점을 가진 채 하나의 삼각형을 만들었다면, 네 번째 앨범은 그 삼각형을 밑면으로 하는 정사면체를 만드는 꼭짓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네 장의 앨범이 각자 자리를 지키며 그 사이 만들어낸 공간 속 어딘가에 권나무의 음악이 위치하게 될 수 있을 거라 그려보았다. 그래서 4집은 1집부터 3집까지를 관통하면서도 조금은 넓은 위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를 위해 가사의 세계관을 넓히거나 악곡의 규모를 키우는 방식의 다소 기계적인 확장을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 자연스러운 방식도 아니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 그동안 내 나름대로 음악의 크기를 키워온 방식은 3집까지로 이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집 작업을 하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라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3집 이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곡들을 만들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어쿠스틱 기타와 나일론 기타 본연의 소리들을 조금 더 잘 활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함께 연주할 때 더 즐겁고 아름다울 것 같은 연주들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4집은 어쿠스틱 기타-클래식 기타-피아노와 최소한의 일렉트릭 기타로 편성했기 때문에 3집에 비해 오히려 소박해진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달하고 싶은 정서나 메시지를 가장 적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악곡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 각각의 악기들을 보다 확장된 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용된 악기의 종류는 줄었을지 모르나 감각적으로는 조금 더 풍성한 음악을 담고 싶었다.

앨범 타이틀인 [삶의 향기]라는 제목은 어떤 면에서는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앨범 소개 글을 읽고 나니 그 이상의 담고자 하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권나무: (작업을 마치고) 이제 모든 게 다 준비가 됐는데, 앨범의 모든 것들을 시원한 마음이 들게 한 번에 딱 붙잡을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이런 건 고심하면 할수록 잘되지 않으니까 발매 직전에는 어떻게든 나오지 않겠냐고 생각해 계속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무언가에 이끌리듯 피지컬 앨범의 커버 스케치를 하게 되었다. (물론 실제 최종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담당해 주셨다) 4월 28일이었다. 그냥 낙서를 하면서 녹음 계획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 낱말이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음반 커버에 나열된 그 단어들 말이다. ‘Life’, ‘Real’, ‘Heal’, ‘Give’, ‘Here’, ‘Dear’, ‘Near’, Care’ ‘Love’ 등 각 노래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세로로 나열해 보다가 이것들을 연결해 내는 뭔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어들을 늘어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과정에서 ‘Fragrance(향기)’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각 낱말들이 병치 되면서 내 기준에서 어떤 완결성이 생겼다. 앞서 말한 낱말들은 결국 ‘삶’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삶의 향기’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Fragrance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한 커버 이미지가 떠올라 곧 스케치를 해두었다. 며칠 뒤 앨범 아트웍을 맡기고자 했던 디자이너에게 스케치를 전달해 곧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삶의 향기’란 제목의 의미를 사후적으로 조금 부연해 보자면, 내가 음악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 속에서 느꼈던 즐거움, 답답함, 압박감, 불안감 등 이 모든 게 바로 ‘삶’이며, 그 속의 행복과 고통 모두 ‘향기로운 것’, 조금 더 정확히는 ‘향기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간 일상의 감정과 밀접한 가사들을 표현해왔지만, 타이틀곡 ‘그렇게, 나도 모르게’는 가장 일상에서 공감할 만한 노랫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어떤 상념 속에서 이 가사가 나오기 시작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진다.
권나무: 특별한 상념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기존 내 작법처럼 그냥 기타 들고 멜로디를 흥얼대다가 툭툭 하고 나왔던 거다. 물론 ‘부동산’ 같은 단어는 노랫말로 쓰기에 좀 애매한 단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가사에 담는 게 재미있었다. 그동안 어떤 가사를 쓸 때 곡의 분위기와 무드, 표현하고 싶은 감정선에 맞게 낱말을 다듬고 음율에 맞게 배치하는 과정들은 늘 있었지만, 결국에는 어떤 자리에 맞는 딱 낱말이나 문장이 떠오르거나 견디며 찾아가는 과정이거나 애초에 반드시 쓸 수밖에 없는 낱말이나 문장이어서 다른 것들로는 대체 불가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들이 대부분인데 이 곡에서는 특히 ‘부동산’, ‘복권’과 같은 단어들이 그랬다. 그게 내 현실이기도 하니까.
타이틀곡 외에 가장 먼저 꽂혔던 곡과 노랫말은 아마도 '너의 마음속에’였던 것 같다. 가장 운율을 철저히 맞춘 한 편의 시를 들은 느낌이다. 평소에 곡의 가사를 쓸 때 시를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권나무: 가사와 멜로디를 쓰는 일은 대부분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여태껏 한 30~40곡을 발표했지만, 가사와 멜로디를 따로 만든 곡은 많아야 두세 곡 될까 말까다. 멜로디가 먼저냐 가사가 먼저냐의 문제보다 항상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어떤 ‘정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 외엔 어떻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단어로 어떤 ‘풍경’이라고 해도 되겠다. 노래에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감정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잘 바라보고 싶다는 것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노래 속의 화자가 나 자신일 때도 있을 것이고, 어떤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떠올려 내뱉을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표현하고 싶은 정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멜로디든 노랫말이든 어쩌면 나에게는 그 정서를 확실히 붙잡고 끝까지 밀어가는 것 만이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사에 대해 예를 들어 보자면 만약 어떤 싸움의 상황을 표현한다고 할 때, 나는 그 상황을 단지 ‘싸움’이라 쓰기보다는 ‘두 사람은 말없이 두 시간을 마주 앉아 있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게 더 좋다. 그러다 보니 (내 가사의) 이런 면들이 오히려 시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곡의 ‘정서’를 붙잡고 밀어 가는 과정에서 멜로디와 가사는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그것들의 제 자리들을 찾아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는 도입부가 매우 특이했다. 첫 가사가 나가기 전에 후반부의 ‘별빛이 반짝이는데’부분을 먼저 흘리며 겹쳐지는데, 어떤 나름의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권나무: 그 부분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그 곡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바로 앞 트랙인 ‘너의 마음속에’를 작업할 때, 아날로그 LP 믹스 마스터링을 해서 다른 곡들보다 더 많은 잡음과 판 튀는 소리와 같은 노이즈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녹음도 일부러 데모 버전에 가깝게 하기도 했다. 매끈하게 해상도가 높게 들리는 걸 원하지 않아서 나름대로 가장 좋은 정도를 찾기 위해 엔지니어와 함께 섬세하게 고민했다. ‘너의 마음속에’에서 바로 다음 트랙인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로 이어질 때 자연스럽게 음악이 이어지는 것처럼 들리길 바랐다. 그래서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의 후렴을 곡의 시작 부분으로 당겨 배치하면서 직전 트랙의 사운드 세팅을 그대로 입혀 직전 트랙과의 연결성을 만들고자 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연결이라 생각했다. 한편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좋았다.
타이틀로 표시된 또 하나의 곡인 ‘청춘’은 어쩌면 이번 앨범의 주제적 핵심이 담겨진 곡이란 생각이 들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래도 지키고픈 ‘사랑’의 메시지? 뮤지션 권나무에게 ‘사랑’이란 단어에 담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들어보고 싶다.
권나무: 어쩌면 모든 노래들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너무도 어렵고 때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중요한. 그러나 결코 내 뜻대로는 안 되는. 소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어쩔 수 없는 것’,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사랑은 일종의 프렉탈 구조처럼 가깝고 작은 일상에서부터 멀고 큰 지향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형태들이 비슷한 꼴로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조금은 기성화된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도 작은 곳에서나 큰 곳에서나 어디에서든 내가 일관된 관점이나 삶의 방식을 갖추지 않으면 결국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본다. 이를테면 내 자녀들에게 갖는 감정과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고 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사랑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을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앨범의 마지막을 차지한 두 곡 – ‘생활’과 ‘우리에게’ - 에선 더욱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또는 교사로서의 권나무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그 메시지가 또한 현재의 자신에게 전하는 다짐과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아버지로서, 또 교사로서의 삶이 권나무의 노래 속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권나무: 아이들이 이제 7살, 5살인데, 한 5~6년 쯤 뒤에는 나에 대해 어떤 판단이 한번은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자기중심적인 아이 같은 어른에 불과한지 그래도 조금은 아버지다웠는지 말이다. 무튼,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그 각각의 경험이 일종의 ‘해석의 렌즈’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늘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음악가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모로서 각각의 일상들을 살아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조금씩 더 알게 될수록 오히려 모호해지는 것들을 만날 때도 있고, 여러 가지 역할들과 그에 뒤 따르는 것들에 대한 압력들이 무거울 때도 있지만, 결국 이런 경험들을 통해 얻은 렌즈들 덕분에 세상을 조금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위안 삼을 때가 많다. 적어도 이전의 나 보다는 지금이 ‘(삶을) 조금은 더 배웠다’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결국 그것들이 노래에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뮤지션 권나무는 (어쨌든) 포크 뮤지션이라는 정의는 어느 정도 확실히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포크 음악이란 어떤 것이라고 나름 정의한 게 있을까?
권나무: 포크 음악은 ‘삶’이고, 삶이어야 하고, 삶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악가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면 좋겠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포크 음악은 본질적으로 ‘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음악가들 저마다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의 음악적 감각의 옷을 그 몸 위에 입혀 각자의 삶과 각자의 생각과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포크 뮤지션들 중에서는 어떤 분들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궁금하다.
권나무: 창작을 하는 데 있어 특별히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내 안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게 어떤 것인지를 찾아가는 것 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여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장르를 떠나서 좋아하는 음악들 존경하는 분들은 많다. 음악적 영향은 결국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한 끌림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라이브를 들을 수 없는 얄개들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들, 특히 ‘꿈이라면 좋을까’ 같은 곡도 좋아한다. 너무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중에서는 김민기, 손지연의 음악도 많이 들었고, 조동진의 경우는 풀 밴드 편성으로 편곡해 공연한 콘서트 DVD를 보며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참 아름다웠다. 장르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김태춘의 압도적인 퀄리티의 연주와 빅베이비드라이버, 장들레의 음악도 좋아한다. 비교적 최근에는 원호와 타임머신의 음악도 너무나 좋아하고, 신인류의 음악과 노랫말에 빠져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좋아하는 밴드들도 많고 음악가들도 많은데 다 말하기가 어렵다.
정말 긴 기다림 끝에 신작이 나왔으니, 이제는 다시 공연 활동도 활발하게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앨범 발매 이후의 향후 활동 계획이 어떻게 잡혀있는지 들어보고 싶다.
권나무: 예전의 나였다면 앨범을 발매하고 곧 발매 기념 공연을 하고, 이어서 발매 기념 전국 투어를 하는 식으로 일정을 잡았을 텐데, 지금은 좀 많이 생각이 바뀌었다. 음원을 발매하고 한 달쯤 지나서 피지컬 CD를 발매하고자 했고, 다가오는 연말에 LP를 발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4집 발매 기념 공연이나 4집의 셋리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콘서트 활동은 연말이나 내년 초부터 시작하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속도와 호흡으로 천천히 가고 싶다. 어차피 길게 해나갈 음악이다. 이제 조급하게 해나가고 싶지는 않다. 그간 새 앨범 작업으로 섭외에 응하지 못해 미뤄 두었던 공연들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새 앨범의 곡들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을 때까지는 기존에 우리가 해왔던 방식대로 라이브를 이어갈 생각이다. 이제 곧 공연을 준비하기 위한 본격적인 합주가 시작된다. 새 노래들 하나씩 하나씩 잘 들려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권나무의 음악을 꾸준히 지지해왔던 음악 팬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한다.
권나무: 6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는데,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에 몇 년 만에 댓글을 남겨 주시기도 하고, 오래된 마음들이 담긴 메시지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SNS에서 공유도 많이 해주시고 모두 감사할 뿐이다. 한편 팬분들도 나와 비슷한 시대를 감각하며 같이 나이 들고 있다는 것, 우리가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삶의 향기를 꽃피우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 뭉클해 지기도 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잘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셨다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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