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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ONLY CONTENTS/LIVE REPORT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3 리뷰 : ‘평화’를 생각하며 모인 한국과 해외 뮤지션들의 자연 속 2일간의 축제 (Part 2 - 9/3(일))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3 Day 2

- 야성의 감각과 화평한 낭만이 공존한 철원의 불야성을 기록하다

 

일시: 2023년 9월 2일(토) ~ 3일(일)

장소: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 국민관광지

취재, 글, 사진   허희필

 

여름은 쉽게 가버리지 않았다. ‘몸으로 움직이는 경험’은 음악으로 풍부해진다. 장기 가속화된 펜데믹의 표독스런 현실을 딛고 록 페스티벌 등의 대형 야외 공연들이 지독하게 살아난 이유가 아닐까? 관중의 숨결로 스튜디오 음악은 비로소 생음악이 되고, 이러한 생음악은 다시 뜨거웠던 시간의 양식으로 남는다. 5년의 시간, 네 번째 회차를 맞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하 ‘피스트레인’)을 처음 자리하여 느낀 소회다. 어느 순간부터 축제가 리듬을 가진 사람의 본질을 환기하는 바탕이라는 걸 ‘몸소’ 실감한다.

지난 주말 양일간 평화 축제는 취재진의 환희를 담보하였다. 스테이지가 위치한 고석정 일대가 해당 축제 덕분에 갖게 된 상징적 장소성은 물론, 행사 당일 함께 수놓인 꽃마당과 주상절리의 입지가 축운(祝運)을 띄우기에도 적절하였다. 자연이 만든 소박하고 거대한 흔적들 가운데서 10시간 가까이 사람들을 유동시킨 소리들은 저마다의 감각을 선보이며 어떻게든 남녘의 감수성을 결집시켰다. 그렇게 보면, 열차가 오는 신호음으로 빗대어진 라인업 가이드는 객석 없는 정류장의 손님들을 반기는 최적의 시그널이었다. 점심 한창 때를 지나고부터 차곡차곡 등장하기 시작한 2일차의 라인업은 자유로이 생산된 ‘음표 물자’를 싣고 땅의 무대(Land)와 평화의 무대(Peace)로 구획된 땅을 누비기 시작했다.

가을은 여적 어림도 없다는 듯 내리쬐는 햇발은 분명 무자비했다. 그러나 제주의 오랜 무형 유산을 예명으로 아로새긴 밀레니엄 세대의 아티스트 숨비(Soombee) 덕분에, 초장부터 다가오는 태양의 압력에도 대부분은 자비로웠다. ‘피스트레인’이 페스티벌 데뷔 무대였던 그녀의 능숙한 듯 어리숙한 멘트와 음악에서 돌변하는 퍼포먼스, 무엇보다 추위를 불어넣는 ‘집단 암시’가 한데 섞였기 때문이다. 쓰러지기 전까지는 쓰러지지 않는 더위를 등에 업고 바톤 터치한 태국의 신스 팝 밴드 키키(KIKI)의 사운드는 대지의 열기를 약간 더 밀어냈다. 환상을 그리듯 전진하는 세션의 지속적이고 열정적인 움직임 탓에 베이스 주자가 발목 부상을 당하는 사태도 있었다. 무대를 둘러싼 공명 욕구가 워낙 뚜렷하여 벌어진 일이기에 밴드가 물러가는 순간까지도 그들을 향한 박수를 그칠 수 없었다.

 

태국 밴드 키키(KIKI)의 무대


태양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춘 하늘 아래 R&B, 얼터너티브 소울 보컬 소금(Sogumm)이 모습을 비췄다. 사실 비추었다기보다는 흘러왔다고 보는 게 맞다. 기타, 베이스 세션과 함께 3인조로 흘러온 그들은 관습적으로 서서 노래하는 ‘기본법’을 위반하였다. 40분의 시간 동안 세션은 물결을 훑듯 악기를 매만졌고, 소금은 그녀 자신의 음성이 갖는 특징인 무정형의 읊조림을 풀어놓았다. 축제를 활발발한 무엇으로만 느끼거나 그러고픈 이들에겐 낯선 의혹 같았겠지만, 우연처럼 잠시 사라진 햇빛과 축제의 온도를 맞바꾼 소금의 무대는 진정 생태와 존재를 교집시킨 의식으로 남았다.

 

공교로운 소금의 ‘살풀이’가 그치고 습기와 유분기가 얽히고설킬 즈음 프랑스의 프로듀서, 비트메이커 온라(ONRA)가 MPC 등의 작업기와 생수, 선풍기를 장착하고 나타났다. 소금의 무대 이후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지 않은 태양이 보였기에 그는 조금씩 더위를 호소하였다. 그런 와중에서 중국 문화의 이모저모에서 비롯된 음성을 컷앤페이스트(Cut & Paste)하고 퍽 익숙한 사운드 샘플을 루핑하여 맛깔진 붐뱁(Boom Bap)을 선사한 온라의 프로덕션은 취재진의 원초적인 ‘힙합 사랑’을 상기시켰다. 상호 교류적인 온라의 디제잉이 끝날 무렵 하늘의 열기는 제 도리를 다해간다는 듯 불그스름해지고 있었다. 
 
땅과 평화로 나뉜 무대라는 게 얼핏 축제 간의 경계처럼 보여도, 실은 다른 곳에 경계가 있다. 그건 바로 특정 아티스트에게만 감응하는 까닭에 먼저 무대를 옮겨 가 있는 관객의 마음이다. 늦은 오후에 관악기와 타악기 등을 대동하여 나타난 콜롬비아의 프렌테 쿰비에로(Frente Cumbiero)는 그러한 뭇 관중의 ‘심보’를 모두 누그러뜨렸다. 얼렁덜렁 리듬을 으깨며 호응을 끌어내는 그들의 협연은 그 자체로 ‘육화된 기쁨’이었다. 리듬의 근원(아프리카)과 중심부(아메리카 남방)의 소리가 함께 연출한 댄스 파티는 콤부차의 맛까지도 새로이 움트게 만들었다. 나 하나의 소리가 곧 누군가의 축제를 만들고, 누군가의 소리가 바로 나 하나의 평화를 피운다는 사실을 땅 위에서 체감한 순간이다. 

 

콜롬비아 밴드 프렌테 쿰비에로(Frente Cumbiero)


저녁의 검고 시원한 공기가 몰려오고, 열기를 장악할 권리는 다중에게로 넘어왔다. 하늘이 제 몫을 교차할 시간에 등장한 이 시대의 ‘인디 스타’ 김뜻돌의 존재가 자연과 좋은 합을 이루었다. 죽지 말고 부르자는 그녀의 제안에서 2020년대의 시대정신인 ‘탄탄한 생존’을 끌어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질감은 다를지언정 그 정신을 건네받아 절박한 소리마당을 만든 잠비나이(JAMBINAI)의 음파도 절륜하였다. 이들이 쌓아올린 축제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기 무섭게 아트 펑크의 인재(人才) HMLTD가 엄습하였다. 밴드의 장르와 비주얼 모두에 열띠게 발광하는 청중이 많은 이상 게임은 끝났다. 배우의 용모를 띤 헨리 스파이칼스키(Henry Spychalski/Henry Chisholm)의 격정적인 가창은 관중과의 도타운 호흡을 딱 광기 직전까지 조절하였다. 축제의 마지막 해외 라인업으로 배정되어 있던 마일드 하이 클럽(Mild High Club)의 사정상 불참으로 이들의 존재감은 그들 몫까지 배가된 듯하였다.

 

잠비나이


공기는 완연히 맑아졌고, 하루 해 너머 밤의 끝을 달리기 위하여 등장한 밴드가 마이앤트메리(My Aunt Mary), CHS, 아도이(ADOY)라는 점도 우연의 연속이다. 이들은 모두 조금씩 연령을 달리하는 불특정 다수의 청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채로운 선물보따리처럼 소리를 풀어놓고 여와 남이 슬램(Slam)하며 서로 간의 체취를 공유하는 풍경은 이것이 한 여름 밤의 그룹사운드 제전이라는 걸 DMZ 앞에 선언한 셈이다. 

 

아도이


젊어서 노는 3종 육상 잔치가 그친 자리에 73세 가객 최백호가 일찍 들어섰다. 그는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피스트레인’의 마지막 순간 전 세대를 물들였다. 축제의 끝에서 애초부터 관객과 함께 할 준비를 마친 채 말쑥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초연한 단벌신사였다. 그리고 이내 최백호가 담담히 풀어놓은 절창들(‘봄날은 간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열애’ 이상 커버/ ‘부산에 가면’, ‘바다 끝’, ‘뛰어’,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이상 최백호 원곡)은 환향(還香)하듯 취재진의 영혼을 쓸었다. ‘불꽃을 피우리라’던 앙코르 커버의 음성은 ‘피스트레인’에 내리는 막과 대비되며 아름다운 모순을 남겼다. 그렇게 9월의 주말을 채운 가지각색의 서정들이 시원섭섭하게 흩어졌다. 그렇지만 기약은 필연적이고, 다른 모습들로 축제는 반복되리라는 걸 믿기에 그것은 끝이 아니다. 화제의 밴드 경연에서 ‘불꽃’을 피웠던 권인하의 곡명을 바꾸어 음악은 계절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Live at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3)

(출처: Mad Hatter영호의 인기가요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