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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ARTICLES/ISSUE NO.9

전유동, ‘자연’에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더한 정규앨범으로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INTERVIEW: 전유동 with 프로듀서 단편선

첫 정규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2020)을 통해 인디 포크 씬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의 음악은 ‘자연’을 소재로 삼아 그 속에서 삶과 주변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며 평단의 호평을 얻어왔다. 그가 EP [이소](2021)이후 2년만에 신작이자 정규 2집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으로 다시 대중의 곁에 돌아왔다. 전작들과는 분명 일정한 변화가 감지되는 신작의 제작 과정과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9월 22일 인천광역시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진행된 공연 현장에서 그와 만났다. 때 마침 이 공연의 포맷이 ‘싱어송라이터 X 프로듀서’의 조합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었기에, 공연이 끝난 이후 그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오소리웍스 프로덕션의 수장 단편선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티스트의 작품에 대해 송라이터 본인 뿐만 아니라 제작자의 관점도 함께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인터뷰 질문, 정리   김성환
사진제공   오소리웍스

지난 6월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후 활발히 공연을 다니고 있고, 오늘 부평문화사랑방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오늘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먼저 들어보고 싶다.
전유동(이하 전): 인천에서 거주하면서 ‘인천의 뮤지션’이라는 말도 듣고 있는데, (인천의) 여러 공간에서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획자와 좋은 공간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았다. (공연장의)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아마도 연극을 주로 하던 공연장이라 옆에서 관객들이 보는 무대는 처음이어서 색다르고 기분이 좋았다.  

직접 언급한 대로 현재는 인천에서 거주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인천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왜 바로 서울이 아닌 인천을 택했는지도 궁금하다. 몇 년간 살면서 느꼈던 이곳에 대한 인상도...
전: 내가 29살이 되었을 때 즈음에, 뮤지션으로서 서른이 되기 전에 홍대에는 진출해야 되지 않겠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울시 보문동에서 아는 형님의 집에서 2년 정도를 얹혀살며 함께 셋방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그 형이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혼자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서울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천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새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서울에서는 그걸 하기 힘들다가 인천에 내려오니 새와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람사르 습지나 갯벌도 있고, 바다도 볼 수 있어서 (자연을 관찰하기에) 좋았다. 정규 1집에 수록된 ‘참새는 귀여워’라는 연주곡이 있는데, 실제로 인천대공원에 가서 기타 연주를 녹음했다.  

그런데 원래 고향은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으로 알고 있고, 처음에는 칠곡과 대구쪽에서 활동하다가 수도권으로 올라왔다고 알고 있다. 처음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결심했던 계기가 있었다면 언제, 어떤 계기였을까?
전: 실제로 대구에서 태어나서 경북 칠곡으로 이사하여 대구를 오가면서 음악활동을 했었다. 원래 학교 시절의 꿈은 만화가였는데, 입시 준비를 미리 하지 않아서 예고에는 갔지만 그 쪽으로 진로를 준비하던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에 난 자신을 표현하는 건 미술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길을 포기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취미로 치고 있었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여태까지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왔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은 국어국문학과로 갔는데, 노랫말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2015년 처음 데뷔했을 때는 클라우즈 블록(Cloud’s Block)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4장의 싱글과 ‘인천의 포크’ 앨범 시리즈 중 하나인 [서울, 변두리]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왜 다시 예명 대신에 본명으로 활동하겠다고 결정한 건지 궁금하다. 
전: 그 이유는 첫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하면서 단편선 프로듀서가 그간의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기 때문이다.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활동명이 지금의 음악과는 맞지 않다고 얘기해 주었던 것이다. 더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이름을 바꾸는게 좋겠다고 하여 계속 고민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본명을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뮤지션 천용성도 단편선 프로듀서에게 “유동씨는 얼굴이 그냥 전유동이다.”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함께 무대에 섰던 단편선 프로듀서와 만나면서 오소리웍스와 계약을 맺고 첫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을 내놓게 되었다. 단편선 프로듀서와는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그와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했는지 들어보고 싶다. 
전: 2018년 해방촌 공연을 하면서 단편선 프로듀서와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음악 유통사 직원이었는데, 그 때 처음 인연을 맺은 후 계속 음악 활동을 하다가 정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천용성의 1집 앨범을 듣고 그에게 프로듀싱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연락을 취해 부탁을 하게 되었다.  

 


첫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은 당시 평론가들이나 인디 음악 매니아들에게 조용하지만 꽤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클라우즈 블록으로 노래하던 시절에는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포크의 정석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 앨범의 음악들은 그보다는 확실히 포크 록이나 일렉트로닉, 모던 록, 아트 록 등 타 장르의 문법을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시도가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음악적 변화는 본인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단편선과의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끌어올린 아이디어였나?
전: 일단 단편선 프로듀서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후에는 모든 권한을 그에게 넘겼다. 사실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하는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할 줄도 몰랐고, 그가 천용성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을 듣고 신뢰감을 가졌기에, 내 음악이 그의 손에서 어떻게 바뀔까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그에게 모든 걸 일임한 것이다. 그래서 단편선 프로듀서가 일이 더 많아졌을 텐데, 많이 고민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그가 잘 설명해 주었다. 
단편선(이하 단): 일단은 [인천의 포크] 컴필레이션 작업에서도 잠시 만난 적이 있었고, 내심 그의 음악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제가 돈이 없어서.......(웃음) 먼저 나서지 못하다가 전유동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1집의 데모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은 자기 혼자서 음반을 낼 준비를 다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편곡이 거의 다 끝났던 음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서는 그 편곡의 절반은 다 ‘뜯어고쳤다.’ 원래의 편곡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프로듀서가 하는 일이 곡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멜로디 등이 잠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극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그가 다 만든 곡 안에서 어떤 요소들을 확 돋보이게 끌어내자는 게 내 목표였다. 

2021년에 나온 EP [이소]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소재들을 제목으로 활용하여 그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뽑아내는 방식의 곡들로 채웠다. 드라마틱한 프로그레시브 포크 록인 타이틀곡 ‘숲으로’도 매력적이었고, 첫 트랙 ‘은행나무’에서는 포스트 록적인 분위기까지 녹여냈다고 생각하는데, 노래의 서사를 왜 계속 ‘자연과 그 속의 생물들’에서 소재를 찾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전: 그게 아마 ‘4월이란 이름의 추상화’라는 곡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그 때 당시에 동료 뮤지션들에게 ‘가사가 너무 어렵다’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분명 진심어린 피드백이었다. 어찌되었든 노래를 계속 쓰는데도 그 당시에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 이것이 나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꾸며낸 이야기보다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남들에게 던지고픈 화두나 주제들을 노래에 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1집 수록곡들을 차근차근 만들면서,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소재를 자연에서 끌어내는게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다. 

(단편선에게) 그러면 1집의 데모 음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소재의 특이함에서 받은 느낌은 어땠나? 
단: 사실 그 점이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좋았다. 한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집중력있게 만들어나가는게 프로듀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뮤지션이 자신의 핵심적 무기가, 매력이 있다는 건 좋은 것 아니겠나. 그가 가진 목소리가 가진 뉘앙스의 매력도 일단 좋았지만, 그 중에서 자연을 테마로 삼았다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풍광을,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않나. 

2023년 6월에 드디어 정규 2집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을 발표했다. 그 전까지는 피지컬 CD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CD포맷을 발매했다.  이런 변화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가? 
전: 일단 처음 정규 1집을 냈을 때는 내 음악을 들을 때 함께할 책을 냈었다. 그랬던 이유는 그 당시엔 사람들이 요새는 CD를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음악을 듣는 분들에게 짐을 안겨드리기 싫었던 것 같다. 이를 제 팬들 중 일부는 ‘자연주의 뮤지션, 친환경 뮤지션’으로 포장해 주었는데, 지난 EP도 악보집 형식으로 냈더니, 이제는 팬들이 제발 CD를 내달라고 요청해서 기대에 부응하고자 CD형태로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앨범에 담긴 노래들의 작사-작곡 작업을 위해 2022년에 한 달간 춘천을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왜 춘천을 음악작업을 위한 장소로 선택했고, 한 달간 작사-작곡 작업은 대체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전: 아까 공연 중에 거기서 만든 곡들 중 3곡만 실렸다고 말하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음반의 테마를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맞다. 이번 앨범의 전반적인 감성과 무드를 어느 방향으로 잡을지를 춘천에서 많이 확보했던 거다. 다만 거기서 직접 쓴 곡들 외에도 더 좋은 곡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돌아와서도 곡을 더 만들게 된 것이다. 춘천으로 결정한 이유는 작곡을 위해 한 달 살이 할 곳이 어디 있는지 친구들에게 문의했더니 한 명이 자신이 춘천에 아는 곳이 있다고 소개해줘서 그 쪽으로 가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서 공간은 좋았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키니까 외로움도 생겨서 가끔 30분 이상 걸어서 남한강의 모습을 보러 가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자연’을 소재로 삼아왔던 전유동의 음악이 이번 앨범에서는 제목부터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제목도 다채로워졌다고 할까? 보다 ‘사람과 관계’의 이야기가 더 많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8곡의 노래들 가운데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의 제목이 앨범 전체의 제목으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 단편선 프로듀서와 어떤 글이 이번 앨범을 잘 설명하고 주제적으로 관통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곡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이 곡의 제목 자체가 이번 앨범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노래 제목이 꽤 길지 않나. 아무튼 다시 읽어보니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앨범을 들으면서 음악적으로도 전작들보다 전자음이 늘어났고, 더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이 들어갔다고 느꼈다. 경쾌한 로커빌리 리듬(강변)부터 브릿 팝/얼터너티브/재즈/블루스가 모두 뒤섞이는 곡(호수)까지 8곡이 모두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굳이 자신의 음악을 ‘포크’에 가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봐도 될까?
전: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는 별 생각이 없다. 과거에 비해 포크라는 장르가 현재 ‘정서적 관점에서 다가가는 장르’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다. 록 사운드가 있음에도 내 음악을 ‘포크’라고 받아들이는 팬들도 있기에, 결국 그 정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건 듣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불리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단편선에게) 그러면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2집의 편곡의 방향성을 잡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다. 
단: 프로듀서로서 정규 1집 작업을 할 때는 ‘스트레이트하게 가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1집의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하고, 꼬여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정규 2집을 낼 때는 뭔가 ‘풍경 같은 것을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을 듣고 있으면 ‘(편곡을) 더 걷어내도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사람들 머릿속에 풍경이 그려지게 편곡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작업했다.
전: 1집의 경우에는 ‘명료함’이 중요했던 것 같고, 2집의 경우에는 ‘몽실몽실하게’ 무드를 그려주는 것을 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장르적 요소의 개입은 만들다 보니 그렇게 간 것이지 특별히 장르적 의도를 갖고 처음 임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오소리웍스에서 근래에 나온 음반들을 듣다보면 어느 정도 단편선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들이 개입된다고 느꼈다. 작곡해 온 곡들을 들으면서 편곡의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얻게 되는가? 
단: 기본적으로는 곡의 가사, 선율, 무드를 파악하고 (편곡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사실 제약이 별로 없다. 내가 다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미리 음반 작업을 시작하면서 ‘록 음반을 만들자.’ ‘포크 음반을 만들자’고 생각해놓고 만들지 않는다. 작업을 하다보면 그 속에서 방향이 잡히는 건데, 기본적으로는 곡이 가진 특성을 파악하고 그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레퍼런스들을 떠올리며 진행을 해간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앨범 속에서 본인이 가장 결과물로서 만족하고 있는 트랙이 있다면 어느 곡인지 골라서 이유를 설명해 준다면? 그리고 앨범 속에서 본인 스스로 새롭게 도전했다는 느낌을 받는 곡이 있다면 골라 설명해달라.
전: ‘강변’을 가장 좋아하는데, 단편선 프로듀서가 피아노로 강변에서 빛이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연상되는 연주를 해주셨는데, 춘천에서 처음 곡을 쓸 때도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며 악상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걸 정말 편곡으로 구현을 해주니, 내가 실제 보았던 장면이 담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대로 완성되어서 신기하고 만족도가 높았다. 가장 어려웠던 곡은 ‘토마토’였는데, 이 곡은 사실 정말 쉽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녹음할 때 노래를 부르는 게 쉽지 않았다. 힘을 뺄 때 빼고 알맹이를 가져가야 할 땐 가져가야 하는데, 내가 만들어놓고도 어려워하다가 단편선 프로듀서가 방향을 제시해줘서 힘들어도 그렇게 해내야겠다고 생각하여 많은 시간을 들였던 트랙이다. 
단: ‘강변’도 좋아하지만 ‘호수’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이 곡을 편곡할 때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와 같은 포스트 하드코어 계통의 질감을 개인적으로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럴 만한 곡을 만나지 못하다가 원래 데모는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같은 느낌의 이 곡을 비틀어서 그 방향으로 편곡을 시도해 본 곡이다. 후반부는 포스트 록 스타일을 활용해봤다. 그리고 도전이었던 곡은 ‘참맞다’로, 가장 간결한 곡이었는데 이 ‘간결함’을 구현하기 너무 어려웠다. 생각을 비우고 해야 하는데 잘 안되어서 고생했다. 

그간 여러 번 전유동의 라이브 무대를 보았던 경험에서 보면, 풀 밴드로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때도 있었고, 간단하게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 중심의 간소화된 사운드로 진행한 공연도 있었다. 라이브 공연이 섭외될 때 어떻게 자신의 공연 사운드 편성을 구성하려고 하는 편인지 알고 싶다. 본인은 어떤 형태가 더 선호하는가?
전: 일단 편성의 기준은 ‘출연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밴드 편성의 경우) 함께하는 연주자들에게 미안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도 뮤지션으로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각각 개인의 활동을 병행하는 연주자들이지 않나. 그렇기에 (그들에게 합당한) 댓가를 주지 않는 조건이라면 나 혼자 공연한다는 생각이고, 댓가가 있다면 밴드 편성을 하려고 한다. 혼자 할 때는 내 목소리를 세심하게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고, 밴드와 할 때는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연주자들과 함께 하며 보다 즐거운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지난 여름부터 확실히 여러 지역 공연은 물론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도 출연하는 등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올해 가졌던 공연 무대 가운데 가장 본인도 만족스럽고 인상에 깊게 남았던 무대가 있다면 언제, 어디였을까?
전: 올해에는 전국 투어 마지막 공연이었던 통영 공연이 가장 좋았는데,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였고, 모두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공연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으로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이름을 인디 씬에 확실히 새겨가는 느낌이다. 평생 앞으로도 뮤지션의 길을 가면서 뮤지션으로서 가장 이뤄보고 싶은 음악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전: 첫 번째는 40세가 넘어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고, 두 번째는 야외 페스티벌 무대에서 밴드 포맷으로 동료들과 함께 서고 싶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금전적으로도 안정성을 전해줄 수 있는 훌륭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전유동의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 오는 음악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 일단 내 음악을 들어주신다면 가장 감사할 일이지만, 내 음악 뿐만 아니라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인디 씬에서도 다시 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있지만,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런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공연들은 관객들이 별로 오지 않아서 여러 뮤지션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대형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소형 공연장에서 인디 뮤지션들과 만나는 것도 그것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고 내밀한 거리감에서 이뤄지는 장점이 있으니 그런 무대들도 사랑해주면 좋겠다.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함께 무대에 선 전유동(좌)와 프로듀서 단편선(우)


Bonus Interview: 프로듀서 단편선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단편선이 단편선과 선원들의 해체 이후 오소리웍스라는 프로덕션을 처음 탄생시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단: 계기는 아마도 천용성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대구 밴드였던 전복들에게서 프로듀싱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작품을 작업하다가 또 전유동에게까지 연락이 오면서, 3개의 작품이나 프로듀싱을 하게 되면 뭔가 ’책임감‘이란 게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브랜드로서 틀을 잡기 위해 이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프로듀싱하는 음악에 나름의 어떤 철학(?)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본인은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그리고 오소리웍스에서 포크 계열 뮤지션들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이유는?
단: 개인적으로 어떤 음악을 들어보면 내가 이 음악의 작업을 할 수 있냐 없냐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비애감‘이 있는 음악들은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선원들 시절의 음악은 ’비애‘라기보다는 난폭하고 분노가 담겼던 음악이었기에, 단조 음악이나 발라드, 소울, 훵크 스타일의 음악은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나머지 영역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가사나 무드, 애티튜드를 더 중시하는 것 같은데, (장르로서의) 인디 팝-인디 록 쪽의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우물쭈물하는 음악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포크 계열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많이 작업하게 되었는데, 포크 음악 하는 분들이 참 재미있다. 포크 음악에는 가사가 내용이 많고, 송라이터의 애티튜드가 깊이 있게 담겨있기에 그런 음악들이 내가 작업하면서 붙어서 할 일이 많고, 뽑아낼 것이 많다. 하지만 밴드의 음악들 같은 경우는 사운드 디렉팅을 보는 그 이상을 개입하기가 어렵다. 이미 멤버들이 편곡을 다 완성해놓은 상태가 많고, 이미 그 방식으로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잘 못치는데, 실제로 천용성의 앨범을 작업할 때까지는 집에 일렉트릭 기타도 없었다. 대신에 어쿠스틱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등 현악기들을 활용하는 작업들이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다양한 인디 씬의 포크 뮤지션들과 작업을 펼쳐왔다. (바로 앞이니까 전유동의 음반들은 제외하고) 그간 작업 중에서 본인 입장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단: 천용성의 [수몰]과 선과영의 [밤과 낮]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수몰]은 사운드를 엄청나게 채워서 만든 음반이고, [밤과 낮]은 많이 비우려고 했던 음반인데, 그 의도가 맞아떨어졌고, 의도가 잘 표현된 음반들이라 만족스러웠다. 

한 때는 본인이 주목받는 뮤지션으로서, 지금은 하나의 프로덕션의 수장으로서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 뮤지션 단편선으로는 언제쯤 돌아올 계획인가?
단: 이 매체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 밝히지만, 2024년에 신작이 무조건 나온다. 솔로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조직하고 있는데, 2년째 준비해왔다. 기본적으로 밴드 포맷이지만 여기에 무언가를 더하는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필자 주: 이 새로운 밴드에 대해 그는 '단편선 순간들'이라는 팀명을 공개했고, 고정 멤버인 자신을 제외하고는 "각 연주자는 자유로운 계약 관계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일시적·주체적·수평적으로 존재한다."는 설명과 함께 비고정 멤버 형태로 운영할 것임을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이 페이스북 포스팅 참조.) 

https://www.facebook.com/pyunsun.dan/posts/pfbid0878sLmvAuLupLxscsSZPP2C81kjpRhGx1CTe9YRgqHZVyY9rs8qyfqcDtUbxnNkKl

 

전유동 -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
2023 ○ 오소리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