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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ARTICLES/ISSUE NO.12

KIRARA(키라라), ‘어두운 것, 심각한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밝게 풀어내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INTERVIEW: KIRARA(키라라)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8장의 EP와 4장의 정규음반, 연 30회 이상의 공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일렉트로닉 뮤지션 키라라는 2025년 2월 정규 5집 [KIRARA]를 통해 그간의 음악적 장점에 더해 다양한 장르 뮤지션들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SSAP : 키라라의 일단 앨범내기] 라는 이름 아래 인디뮤지션 양성을 위한 앨범 제작 워크숍의 강사로 활동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키라라와 만나 신보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진행, 정리   김성환

사진 제공, 진행 협조   까미뮤직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 지난 토요일(4월 19일)에 정규 5집 [KIRARA] 발매 기념 공연과 어제(4월 21일)에 제자들의 졸업 발표회 이벤트까지 마무리 지었는데, 앨범 발매와 연이어 큰 행사를 끝마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키라라: 막 너무 큰 두 일을 마치고 나니 내가 많은 사람에게 엄청 멋진 사람, 좋은 사람, 매우 훌륭한 사람이 돼 있더라. 그래서 그게 참 감사하다고 많이 생각하고 있다. 정말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그럴수록 겸허한 맘으로 다가오는 많은 기회에 열심히 임해야겠다는, 직업 정신에 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실 예전에 냈던 앨범들과 이번 앨범에 관한 소감이 완전히 다른 것 같긴 하다. 셀프 타이틀 앨범이기에 그만큼 [KIRARA]는 내 인격에 관한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것이 완성되었다기보다는 이제야 길이 보이는 정도일 것 같다. 3~4집을 발표했을 때는 앨범을 내고 나면 참 찝찝하고 우울했고,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들을까?’, ‘이게 나의 최선일까?’라는 생각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 앨범을 발표한 후엔 굉장히 후련한 것 같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굉장히 떳떳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낸 느낌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진다. 정말 앨범 내고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이 없다.

그간의 앨범들은 대부분 EP나 정규작이나 ‘cts’라는 카탈로그 번호 같은 호칭을 시리즈로 사용하거나 한 단어 형태로 타이틀을 삼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정규 5집은 특별히 본인의 이름으로 타이틀을 삼았다. 특별히 그렇게 정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키라라: 사실 상업적인 이유도 있긴 하다. 하도 많은 앨범을 기획하다 보니 셀프 타이틀로 앨범명을 지었을 때 평론가들이나 많은 대중이 주목해줄 거라고 자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멋지지 않나. 남들이 잘 안 하는 거이기도 하고. 블러(Blur)도 5집이 셀프 타이틀이더라. 그래서 그런 게 참 멋있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의 내가 ‘참 자신 있는 나’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

앞선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4집의 키워드는 내 분노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고, 5집은 내 산만함을 정돈하고 평정심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는데, 그럼 지금 돌이켜보면 그 분노와 산만함의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본인은 생각하는가? 그리고 홍대와 달리 지금의 영종도에서의 키라라는 확실히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 생각하나?
키라라: 4집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무거웠다. 죽음이나 어떤 심리적인 문제, 박탈감과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앨범인 게 첫 번째 이유였고, 그걸 이야기하는 방식이 되게 비겁했다고 생각하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이렇게 자평하는 이유는 내가 이야기를 전했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체념과 냉소가 함께 담긴 채 그 앨범을 냈고, 그러면서도 대중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기에 반어법을 이용해서 표현한 것들도 많이 있었다. ‘정말 나는 네가 싫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정말 꼬고 꼬아서 수동적인 공격을 많이 사용해서 앨범의 서사를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영종도에서의 생활은평온함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바닷가에 있는 것 같다. 바닷가에서 멍때리면서 음악 많이 듣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재밌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앨범의 발매와 함께 [키라라에 대하여]라는 코멘터리 앨범까지도 온라인에서 추가로 공개했다. 앨범의 코멘터리까지 세세하게 본인이 설명하는 음원을 내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키라라: 내게는 자연스러운 고민의 결과였는데, 그것이 평소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한테 와닿는 어떤 논리와 같은 것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기에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정보를 떠먹여 주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꽂혔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어긋나지 않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어떤 논리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성향이 그렇다 보니까 이 코멘터리 앨범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치 이 앨범 제목이 [KIRARA]가 된 이유와 비슷하게 남들이 잘 안 하는 것이니까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코멘터리 앨범을 만드는 분이 동료 음악가 중에서는 황소윤(밴드 새소년의 보컬, 리더)이 떠오르긴 하는데, 처음 목표는 ‘무조건 그녀의 것보다는 재밌게 만들자’라는 생각이었다.

 

키라라 5집 [KIRARA]의 음반 커버

 


사실 코멘터리 내용이 너무 자세해서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질문 생각해내는 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신보와 수록곡에 관한 질문을 이어가 보겠다. 일단 선공개된 ‘음악’에서 선우정아의 목소리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곡 자체가 상당히 전자 음악임에도 동시에 선우정아의 보이스 샘플이 재즈의 스캣(Skat)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멘터리에서도 일부 설명했지만) 곡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핵심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키라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밈(meem) 가운데 ‘재즈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시작하는 밈이 있다. 그리고 선우정아가 어느 페스티벌 현장에서 이걸 재현하면서 스캣을 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난 이후, 한국에서 스캣으로 작업을 한다면 선우정아와 함께해야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생겼던 것 같다. 좋아하는 전자음악가 중에 몬도 그로소(Mondo Gross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오사와 신이치(大沢伸一)라는 프로듀서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이미 그의 4집과 5집에서 스캣과 함께한 전자 음악을 한 곡씩 넣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나는 비언어적인 작업을 잘하는 것 같고, 그게 더 재밌는데, 이런 작업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좋은 형태는 비언어적인 형식을 빌려서 가장 언어적이게끔 들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작업의 제일 잘한 방식이 하우스 음악 위에 스캣을 얻는 형식일 거라고 혼자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것 같다.

 

KIRARA - 음악 (Feat. 선우정아)

 

‘콘트라스트’나 ‘조각’에서는 래퍼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키라라의 음악들 중에서는 힙합적 요소가 가장 깊게 들어간 곡이라 생각한다. 래퍼들의 메시지와 자신이 애초에 곡에서 의도한 것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키라라: 일단 래퍼를 찾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그나마 찾고 찾은 사람 둘이 스월비(Swerby)와 언텔(Untell)이었는데. 일단 스월비와 함께한 이유는 그가 음악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가 원하는 것을 잘 캐치해서 잘 표현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텔의 랩 같은 경우에는 내 음악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곡 제목을 ‘콘트라스트’라고 짓고, 그 대비됨을 콘셉트로 가져간 것이다. 나름대로 영리하게 계획을 짠 것이다. 실제 언텔 이 쓴 가사가 오히려 너무 내 음악이랑 안 어울렸기에, 그 안 어울려서 재미있는 것을 이용하자는 방식으로 표현을 해본 것이다. 3일 전에 했던 이번 공연에서 ‘콘트라스트’를 연주할 때도 오디오 비주얼이 완성되어서 공연되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그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다. 그의 랩을 잘 묻게 하지 않고, 물과 기름이 분리되어 있지만 맛이 있는, 마치 잘 끓인 마라탕 국물 같은 걸 만들고 싶었던 거다. 물론 이 물과 기름이 용해가 잘 되어 있는 좋은 요리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마라탕 같은 걸 만들어서 좀 미안한 느낌이 있긴 하다.

코멘터리에서 들어보면 ‘샐러드’는 동료 뮤지션 장명선을 모티프로 만든 선물같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와는 언제부터 알게 되었고, 같은 전자음악을 하면서도 두사람이 성향이 꽤 다른데,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궁금하다.
키라라: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게 2017년~2018년 즈음일 거다. 내 레슨을 받는 학생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내 레슨도 참 어설펐는데, 그걸 들으면서 음악을 시작했던 친구가 나중에 스스로 만든 정규 1집으로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까지 올랐을 때가 아마 제가 11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기뻤던 모든 순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친구에게 과몰입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만큼 서로 불편한 일도 있었던 것 같다. 서먹했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이젠 그런 시절은 다 지나서 둘 다 30대가 되었고, 그 친구는 결혼한다고 하고 있고, 나도 더 많은 레슨을 하면서 제2, 제3의 장명선을 배출한 느낌도 든다. 그런 긴 역사 속에서 많은 감정들을 나눈 소중한 친구로 내겐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이젠 그냥 그 친구가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감도’를 처음 들었을 때 캡슐(Capsule)이나 퍼퓸(Perfume)의 느낌, 일본의 프로듀서 나카타 야스타카(Nakata Yastaka)의 사운드를 떠올렸었고, 코멘터리에서도 그 내용을 언급했더라. 어떤 면에서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성향의 곡이란 생각도 했는데, 예람의 목소리도 참 매력적이었는데, 보컬의 디렉팅에서는 특별히 요구했던 것이 있었나?
키라라: 예람은 쿠세가 굉장히 센 음악가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게 된 이유는 코멘터리 앨범에서 밝혔지만 일본 음악의 감성을 알고 있고, 일본 음악에 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람의 쿠세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만든 MR에 그가 어떤 걸 했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다. 특별히 어떻게 불러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고, 그는 아마 자기 편한 방식으로 곡을 만들어서 불렀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 곡이 무엇에 대한 음악인지는 설명했지만, 그에게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달라는 디렉팅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결과물도 한방에 만족했다.

록-코어 팬들에게는 이번 앨범에서는 할로우잰(Hallow Jan)과의 협업인 ‘증발’이 가장 귀에 확 들어왔던 곡일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에도 록 계열 음악들에 대해서 즐겨듣는 범위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앞으로 후속 작업에서도 기존의 키라라의 음악과 상이한 장르의 요소를 도입하고 싶다면 어떤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지 알고 싶다.
키라라: 나도 음악은 이제 이것저것 다 듣는 편이긴 해서 당연히 뭐 비틀즈(The Beatles)부터 다 들어봤고, 제일 좋아하는 밴드는 일단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다. 근데 이 질문에서는 좀 헤비니스 쪽으로 좁혀야 할 것 같다. 할로우잰의 음악을 듣기 이전에는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Toxicity] 외에는 헤비니스 음악을 조예 깊게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할로우잰의 음악이 귀에 들어온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에는 그들의 음악을 헤비니스로 분류해서 생각했다기보다는 포스트 록(Post Rock)의 맥락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 협업하면서 믹스를 할 때는 데프헤븐(Deafheaven)을 좋아하게 됐었다.

 

KIRARA - 증발 (with Hollow Jan)

 

혹시 (그간 시도해보지 않은 것 가운데) 머릿속에서 앞으로 후속 작업에서 이런 장르적 요소도 한번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
키라라: 사실 오랫동안 라틴 장르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2000년대 전자음악가들이 꼭 한 번은 라틴 삼바를 건드리더라. 그러니까 삼바(Samba) 음악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라틴 하우스(Latin House) 같은 것을 만든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것을 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방법을 찾는 일이 아직은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어쨌든 나중에는 꼭 한번 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마 보사노바 리듬을 빠르게 연주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를 구하는 것이 첫 번째일것 같다.

‘지구 밖’에서는 그간 키라라의 작품에 많이 참여한 한정인이 보컬을 맡았고, 코멘터리에서는 디지털로 직접 만들어낸 어쿠스틱 기타 샘플이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평소 샘플의 활용은 사람의 리얼 연주에서 따는 경우가 많은가, 아니면 이처럼 신시사이저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 많은가.
키라라: 미술이나 디자인 쪽에서 이야기하는 용어 중에서 ‘불편한 골짜기’라는 말이 있다. 난 그게 음악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인위적인 소리는 완전히 인위적이어야 되고, 자연스러운 소리는 완전히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피아노 소리를 내 음악에 사용한다면 일부러 컴프레서를 걸어서 다이나믹이 없어지게 만든다든지, 무리하게 릴리즈를 없애서 뚝뚝 끊어지는 소리로 만들어 그것을 전자음악의 맥락으로 바꾸어서 쓰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구 밖’에 들어있는 기타 소리를 리얼 기타 소리로 담을까 고민했던 그 지점은 기타에서 불편한 골짜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불편한 골짜기를 안고 가자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한정인의 아이디어도 있었고, 이 음악에서 기타가 그렇게 중요한 악기도 아니었기에 내가 고민하는 어떤 ‘불편한 골짜기’라는 영역을 한 번은 전시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태까지의 키라라의 음악에서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찍은 소리’와 실제 연주에서 ‘뽑은 소리’의 비율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키라라: 근데 이렇게 딱 나눠서 얘기하는 것은 좀 애매하다. 다른 연주자가 연주한 소리를 샘플링을 해서 찍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누가 찍은 소리를 뭐 내 샘플러에 넣고 연주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전자음악의 세계에서는 ‘찍은 소리’와 ‘연주하는 소리’의 경계는 좀 허물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격추’에서의 스트링의 활용에 대해 저스티스(Justice)가 영향권에 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들었다. 일본 아티스트 범위를 넘어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서양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있다면 누구일까.
키라라: 먼저 영국의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외에도 프로디지(The Prodigy) 등 많은 영국 뮤지션들이 있다. 그리고 2000년대 활동했던 음악가 중에서는 시미안 모바일 디스코(Simian Mobile Disco)라는 테크노 듀오도 좋아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영국이 중요한 것 같고, 또 프랑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프렌치 하우스(French House)라는 장르의 영향을 분명히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운드를 더 하드하게 만들어서 2000년대 이후에 유행시켰던 저스티스의 레이블인 에드뱅어(Ed Banger) 레코즈의 음악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결국 내 음악적 토양은 분명히 영국, 프랑스, 일본인 것 같다. 그 외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취향이 그곳에만 몰려있는 느낌이고, 그러면서 스피릿은 한국을 자꾸 찾고 있는 것 같고.

‘Love Me’에서 불독맨션의 ‘Destiny’의 여러 음악적 요소들이 샘플로 적절하게 활용되었다. 수많은 곡 중에서 이 곡이 선택된 것은 원곡의 그 가사 부분 때문일까? 아니면 애초에 불독맨션의 그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작업하다 보니까 그 부분이 적절해서 활용하고 제목도 그리 붙인 것인가?
키라라: 두 가지 모두라 생각하지만, 전자의 이유가 첫 번째이긴 했다. 개인적으로 ‘사랑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이 음악을 만들었다. 코멘터리 앨범에서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사랑받는다는 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들이 내게 줬던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랑을 내가 오롯이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어떤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이 곡을 샘플로 사용하고 싶다고 이한철에게 연락했을 때, 그리고 완성된 곡을 들었을 때 그는 뭐라고 말했나.
키라라: 이한철 선배님이 “키라라의 음악 속에서 (이 곡이) 재탄생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를 응원합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매우 쿨하게 말씀해주신 느낌이었고, 그 외에도 할로우잰 멤버들도 그렇고 (이번 앨범에 참여한) 선배 음악가들이 모두 호의적이었다. 그 부분이 참 감사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냉소적인 분들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다 착한 마음으로 지켜봐 준 것 같다.

‘FP’는 앨범 속 트랙들 속에서는 어쩌면 BPM이 가장 높은 곡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공항에서의 소음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게 특이했다. FP라는 제목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고, 앨범의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키라라: MBTI라는 게 유행하고 있지 않나. 그 속에서 ‘F’가 ‘감정적(감성적)인 성격’을 말하는 것 같고, ‘P’는 좀 ‘계획적이지 않은 성격’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감정적이고 무계획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 가까운 친구들도 매우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만든 음악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 된 이유는 일단 음악적인 것만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허무함의 유머’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빠르게 들리게끔 만들어진 음악이기도 하다. 이 곡이 끝나는 순간이 앨범이 끝나는 순간일 텐데, 그냥 ‘뚱’ 하고 끝나는 베이스음 하나로 그 허무함의 느낌을 꼭 주고 싶었다는 맥락이 있었다. 그리고 앨범 프로모션을 할 때, 김윤하 평론가가 이 곡의 감상을 말하며 ‘주마등’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다시 말해서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많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얘기해 줬던 것 같다. 그 얘길 듣고 보니 내가 이 앨범에서 이 곡을 제일 마지막에 넣고 싶었던 맥락이 그게 아니었을까 하고 공감했었다.

코멘터리 앨범 [키라라에 대하여]의 마지막 보너스트랙 ‘나 잘난 맛’을 들으면서는 왠지 노래 가사가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원래는 뭔가 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뺀 것인가?
키라라: 사실 가사가 있었다기보다는 이 곡에서 제가 생각했던 가사는 모두 ‘야’였다. ‘야야야야’ 이런 식으로 뭔가 많은 사람이 같이 부르는 느낌으로 ‘나 잘난 맛’을 완성하려고 했다. 근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고, 사실 ‘FP’ 뒤에 이 곡을 배치할 생각이었었는데 앨범이 너무 길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앨범에선 이 곡이 빠지게 된 맥락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곡으로 앨범을 끝냈으면 너무 신파였을 것 같다. 차라리 ‘FP’로 끝나는 게 더 웃기고 재밌었던 것 같다. 엔딩곡이 화합을 이야기하면서 끝내는 그런 것보다는 정신없음을 얘기하면서 끝내는 것이 더 예측 불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키라라의 라이브 스테이지 모습


앨범을 넘어서 아티스트 키라라가 추구하는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 넘어가 보겠다. 코멘터리에서도 일본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에게 받은 영향에 대해 언급했고, 다른 인터뷰에서 음악 창작의 계기가 클래지콰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결국 90년대~2000년대 시부야 케이의 영향이 종종 보여지는데, 한편으로는 팻보이 슬림(Fatboy Slim) 등이 보여준 빅 비트(Big Beat)적인 요소도 꽤 보인다. 비트는 크고 세지만 분명히 멜로디가 있는 전자음악. 그게 키라라가 추구하는 사운드의 중심이라고 봐도 될까?
키라라: 내가 만들고 있는 음악은 결국 다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근데 블랙 코미디도 어쨌든, 코미디이지 않나. 그리고 팻보이 슬림도 얼마나 낙관적인 음악가인가. 결국 어두운 것, 심각한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밝게 풀어낸다는 점이 그와 내가 음악적으로 닮은 점인 것 같다. 나는 사실 멜로디보다는 화성 진행에 접착하는 편이다. 물론 화성 진행도 멜로디로 크게 볼 수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화성 진행을 짜는 게 더 재미있다. 이게 다 전부 시부야 케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2000년대 중반의 일본의 일렉트로닉 음악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음악들의 공통점에서 나온 것이 내 작업 습관인 것 같다. 강한 비트 위에 화성이 나오는 순간을 제일 좋아한다. 내겐 강한 비트만큼이나 어떤 정서를 전달하는 화성 진행도 매우 큰 구성 요소인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도 여러 타 장르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했는데, 혹시 마음 속으로 상대 아티스트의 음악을 흠모(?)하여 내 작업에서 꼭 섭외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있다면 누구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
키라라: 사실 이 질문을 앨범 발표 이후 세 번째 들었는데, 이미 미리 양해까지 구해놓은 아티스트가 한 명 있다. 실제 집에서 모시고 싶었으나 못 모신 음악가인 이자람이다. 그와 작업하는 게 소원이다. 그런데 정말 그의 목소리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그가 부를 수밖에 없는 음악을 꼭 만들고야 말겠다. 그리고 이번 앨범을 만들기 위해 생각했던 분 중에서 연락했다가 엎어진 예도 있고, 연락을 아예 못 한 분도 있다. 일단 힙합 쪽에 윤훼이(Yunhway)라는 분이 있는데 그를 섭외하고 싶었지만 대신 스월비를 섭외했기에 이제 힙합 쪽은 그만 (섭외)해도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 마리아 킴(Maria Kim)과 제대로 된 소울 보컬이 담긴 라틴 하우스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과 처음에 작업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끊겼었다. 그리고 제 음악은 ‘아무튼 착한 음악’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 착함의 끝을 보기 위해서 우효와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 유효의 목소리가 착하지 않나. 소통해 본 적은 없지만.

본인의 단독 무대나 라이브셋(Live Set)을 천명하지 않고 진행하는 행사 속 디제잉 시간에도 확실히 라이브셋 방식을 고집하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음원들을 활용하는 것도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것 같진 않은데, 본인의 라이브 무대를 준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키라라: 다들 음악가로서 관객들이 어떻게 자신의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바람이 있을 것이지 않나. 나는 언제나 관객들이 어떤 절묘함 같은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무릎을 치는 순간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치고 빠짐을 첨예하게 만드는 일을 되게 좋아한다. 어떤 것이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딱 나왔다가, 멈췄다가 다시 나오는 순간에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치고 빠짐’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평범한 댄스 팝도 존재하지만 현재의 케이팝 음악들 속에도 꾸준히 일렉트로닉의 요소는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케이팝 신 쪽에서 당신에게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면 참여할 생각은 있는가. 리믹스나 아니면 프로듀싱에서.
키라라: 만약에 그들이 내게 1000만원, 2000만원 주고 하겠냐고 한다면, 아마 할 수는 있을 거다. 근데 내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케이팝을 만들고 있지 않아도 지금 충분히 내 개인 작품 활동으로 내 일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작업을 논하기에는 내가 케이팝을 잘 모른다. 많이 안 듣는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들도 나를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생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만들어왔던 사람이고, 케이팝과 같은 산업 같은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지금까지 2기에 걸쳐서 [SSAP : 키라라의 일단 앨범내기] 라는 이름 아래 인디펜던트 뮤지션 양성을 위한 앨범 제작 워크숍의 강사로 활동했다. 어쨌든 타인을 지도하거나 조언을 주는 위치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보람이 있다면?
키라라: 사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하고. ‘레슨’이라는 인간관계가 너무 편하고 좋다. 그들은 내게 비용을 냈고, 난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면 되는 거잖나.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마음을 보태서 서비스를 더 주었을 때 고마워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선망받는 존재가 되는 것에서 내 자존감을 찾으면서 살아왔던 거 같다. 레슨에서 미성년자는 받지만 입시생은 받지 않는다. 나는 음악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거나 연장자들 같은 경우에는 일상에서 음악을 계속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동기를 만들어 드리고자 함께 하는 느낌이다. 실제 내 레슨을 받는 분 중에 50대 이상 분들도 꽤 많다. 오히려 그런 분들을 지도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그럼 지금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중 키라라의 레슨을 이수한 이들은 누가 있을까.
키라라: 기나이직해파리의 멤버 최혜원, 그리고 김뜻돌 등이다. 지금 제일 마음이 가는 사람은 기나이직인 것 같다. 그가 요즘 을지로나 이태원 쪽에서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그 친구가 정말 돈도 모으고 자립도 하려고 하고, 음악으로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다. 그에게 많은 기회가 앞으로 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상상마당 수업 1기를 거쳐간 최미루가 강의 수강 과정 중에 만든 앨범이 [nEwCHAt](2024)였다. 그 앨범 수록곡이 이번에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노래 부문 후보에 오르지 않았나. 최근 수강자로서는 그녀가 먼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5집 [키라라]와 5집의 코멘터리 앨범을 듣게 될 독자들과 음악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키라라: 이제 상상마당에서 수강생들을 졸업시켰고, 앨범도 나왔고, 단독 공연도 했다. 이제 내가 여름부터 해야 할 일은 다가오는 공연과 행사를 (레이블) 사장님과 열심히 돌아다니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고 싶은 결과는 연말까지 내 2025년의 활동이 잊히지 않는 거다. 2025년을 빛내는 음악가가 될 수 있도록 남은 계절들도 최선을 다해 보겠다.

 

KIRARA - 콘트라스트 (LIVE, 2025.04.19 키라라 단독 공연 at 무신사 개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