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EATURES+ARTICLES/ISSUE NO.12

남예지, ‘오래된 노래’를 현대의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을 완성해낸 보컬리스트

INTERVIEW: 남예지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특정 장르에 구분선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알려왔다. 중성적인 깊이의 음색과 거기서 비롯하는 곡 해석력은 청자를 끌어들이는 남예지의 최대 자산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우리의 옛 노래와 재즈에 두루 걸친 관심을 토대로 그 접합 지점에 해당하는 작품인 [오래된 노래, 틈](2024)을 발매하여 지난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것은 아티스트가 각별히 마음을 건넨 소리와 시대에 대한 현재의 성취다. 그러한 결실을 둘러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하여 서울 부암동의 작은 서재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진행, 정리   허희필

사진 제공, 진행 협조   남예지 

 

 

먼저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남예지: 현재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가끔씩 글도 쓰고 교육 활동도 하고, 공연 기획도 하며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려 노력 중인 남예지다.


지난 2월 말 제 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드린다. 낭보 이후의 대담인지라 아무래도 남다를 것 같은데, 수상 소감 때 말하지 못했던 소감이 혹 더 있다면 듣고 싶다.
남예지: 하고 싶은 만큼 말을 다 못하긴 했다. 감사한 이들도 많았고, 상을 받고 나서 ‘왜 내 이름은 얘기 안 했냐?’는 농담도 들었다(웃음). 사실 그분들을 다 나열하자면 또 빠지게 될 사람들이 있을 게 분명하니까. 실은 [오래된 노래, 틈] 레퍼토리를 클럽에서 연주한 지 오래되었다. 그 레퍼토리들을 함께 연주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상 자체가 앨범이란 결과물을 낸 음악가에게 주는 건데, 다른 장르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재즈 안에서는 앨범이라는 큰 가치를 두지 않거나 사정상 못 내시는 분도 계신다. 그래서 재즈의 진가를 알려면 재즈 클럽을 찾아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청자나 음악가 모두를 위해서라도. 재즈의 매력을 더 많은 이들이 알기 위해서 꼭 공연장을 찾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처음 음악 세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남예지: 어린 시절 혼자 악보들을 보며 노래하던 걸 좋아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셔서 ‘세광 애창곡집’, ‘팝송 대백과’ 같은 게 있었다. 그걸 한 장 한 장 보며 부르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노래 부르던 게 좋았고, 그게 지속되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노래방을 많이 갔다. 문제집 들고서도 갔다. 사실 공부로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했다. 노래 공부도 많이 했는데 그러다가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자우림 등을 좋아했었기에, 중앙대의 밴드 동아리 블루 드래곤의 오디션도 봤다. 비록 떨어져서 서운하긴 했지만. 그러다가 힙합 동아리를 하는 친구에게서 힙합 트랙에서의 보컬을 제안받았고 무대 체질은 아니었지만, 무대에 처음 섰다. 그런데 이걸 하다 보니 밴드처럼 진짜 악기와 함께 무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을 휴학한 뒤 재즈 아카데미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재즈 뮤지션으로 뮤지션 길을 정하게 된 것인가?
남예지: 이름은 재즈 아카데미였지만 딱히 재즈를 하진 않았다(웃음). 여기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와중에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사실 무슨 오디션인지도 모르던 차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마침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This Masquerade’를 연습하고 있었고, 이 곡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당시 누보 송(Nouveau Son)이라 하여 한국 가요를 재즈로 커버하는 음반에 함께 할 보컬리스트를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 처음 ‘재즈 보컬’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면 20대 내내 재즈가 무언지도 잘 몰랐고 오히려 록 아니면 로린 힐(Lauryn Hill), 앨리샤 키스(Alicia Keys)나 인디아 아리(India.Arie), 가요로는 빅 마마, 거미 등의 흑인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 목소리가 재즈에 맞는다고 말했다. 만약 그때 명확하게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음악적 능력이 있었더라면 좀 다를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재즈는 하기 싫었고 흑인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말은 했어도 회사에서 시키는 방향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 건 1집인 [Am I Blue]를 들으면 알 수 있다시피, 가요와 재즈 사이에 걸쳐 있는 작품의 성격이었다. 그러다가 학교로 돌아갔다. 원래 꿈이 범죄 프로파일러였기 때문이다. 이제 음악을 많이 했다 싶어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당시 날 동아리를 데리고 갔던 친구가 공연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보컬이 없다며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곳을 갔더니 신관웅 선생님의 빅 밴드가 있었다.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와 델타 리듬 보이즈(The Delta Rhythm Boys)의 ‘It’s Only a Paper Moon’과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Glenn Miller Orchestra)의 ‘The Nearness of You’라는 스탠다드 두 곡을 부르라 하셔서 외워 불렀다. 그걸 들으신 선생님께서 내 노래를 좋게 들으셨는지 그때 운영하시던 문 글로우(Moon Glow)라는 재즈 클럽에 오라 하셨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재즈 두 곡을 들고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이 블루문(Blue Moon), 올댓재즈(All That Jazz)로도 오라 하셔서 어느 순간 재즈 보컬이 되어 있었다. 재밌게도 난 처음에는 음악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선택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재즈에서 벗어나려고 가요 기획사도 많이 돌아다녔다. 거기서 가이드, 코러스, 영화 OST 등도 해봤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돌아오는 게 재즈라는 게 늘 신기했다. 그 운명을 받아들인 게 서른 이후였다. 항상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 같은 시작이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단행본인 [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재즈의 즉흥성이나 반복성과 관련하여 반가운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철학이나 인문학은 언제부터 관심을 두고 공부하기 시작한 건가?
남예지: 돌이켜 보면 석사 과정은 실용음악 전공이지만 공연 영상학과라 하여 다른 전공이 묶여있는 곳에서 공부했다. 사실 실용음악 전공에선 들뢰즈(G. Deleuze)를 거론하지 않지만, 음악 외의 융합 부문에서 영화나 미디어 스토리텔링 같은 수업을 들으며 그때 처음 접하게 된 건데 감명이 있지는 않았고 어렵다고 느꼈다. 그런데 졸업 논문 준비를 하며 다른 논문을 찾다가 유독 실용음악만 고립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음악사랄지 음악 산업, 연주 패턴 분석 등 우리끼리만 보고 좋아할 내용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게 아쉬웠다. 항상 재즈는 고립되어 있다거나 우리는 다른 장르에서 다른 걸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는데, 학문마저도 고립되어 있단 생각을 갖게 된 후 음악 분석이나 음악사 연구도 좋지만 좀 새로운 연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재즈가 이렇게 재밌는 연구 주제가 있다는 걸 안다면 이 또한 뮤지션들이 이야기하는 재즈의 저변 확장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관심을 두게 됐다.


범위가 큰 물음이겠지만, 재즈는 무얼 물어보고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남예지: 우리 각각의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지를 묻고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재즈를 하는 모두는,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실제 연주하는 이들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공통된 재즈라는 틀이 있고 재즈적 언어도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곡을 연주하지 않나? 그 순간에 나의 내적인 역동도 필요하겠지만, 외적으로도 나와 누가 연주하고 있는지, 연주 환경이 어떠한지,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이 어떤 건지와 같은 여러 요소가 섞여서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지 않나? 어느 한순간도 똑같을 수 없기도 하고 모두가 특별한 순간인데,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특별함을 얻고자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한다.

 

앨범 [오래된 노래, 틈]의 커버

 

이제 수상작인 최근작 [오래된 노래, 틈](2024)으로 들어가 본다. 곡들 모두 우리 소리에 관한 관심 여부를 떠나서 대중적으로 모두 지나칠 수 없는 곡들인데, 선정배경이 특별히 있었는지 말해 달라.
남예지: 앨범을 제작해야 한다는 목표로 우선 선곡 작업을 한 건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작업한 곡이라 공통된 선정 배경은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아는 곡을 하고 싶었다. 대신 흔히 하는 국악-재즈 간 콜라보레이션을 한다거나 혹은 가창 자체에 국악적 색깔을 넣는다거나, 이런 방식의 해석보다는 ‘온전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멜로디를 재즈로 연주해보자’가 목표였다. 그러기 위하여 어떤 곡들이 내가 편곡하기 편할지, 어떤 곡들이 도저히 국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들지와 같은 선정 기준은 있었다. 재즈로 해석할 만한 여지나 범위가 충분히 있는 곡들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골랐던 것 같다.

 

각기 다른 풍모를 띤 민요들을 편곡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남예지: 굉장히 현대적인 사운드의 재즈이길 바랐다. ‘오래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앨범을 내며 줄곧 얘기했지만, 한국 재즈가 단절기 없이 쭉 로컬라이징(localizing)을 이룬 재즈로서 잘 흘러왔더라면 오늘날 이런 재즈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오늘날 연주되는 모던한 이미지의 재즈 안에서 과거의 오래된 멜로디들이 존재할 수 있는 부분들이 필요했고 그런 점들이 편곡의 방향성이었다. 신구의 조화라기보다는 과거의 멜로디는 멜로디대로 살아있으면 좋겠고, 그걸 감싸고 있는 모던한 사운드의 재즈는 그대로 살아있으면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단순히 섞이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각각이 독립적 세계를 갖고 있으면서 병존하고 있다고 할까?


앨범의 사운드적 지향을 관통하는 ‘틈’이라는 단어는 실존적인 의미에선 자유의 구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들뢰즈적 의미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차이의 기반으로 읽히기도 한다. 명목상 재즈 음반이지만 청자의 입장에선 이 작품이 재즈라는 장르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풀이될 수 있는 앨범으로 느껴지는데, 이 음반을 만들면서 학문적 차원에서의 바탕(들)을 염두에 둔 건지도 궁금했다.
남예지: 이 질문은 이전에도 받은 적 있다. 논문과 책, 음악을 계획적으로 연결 지었느냐는 질문이었었는데 전혀 아니다. 신기한 건 각각의 관심들이었다. 예술-철학에 관한 관심, 일제강점기 음악에 관한 관심, 현대 재즈에 관한 관심이 다 다른데, 사실 그게 다 음악이다. 다 다른 분야로도 보이지만, [오래된 노래, 틈]을 내면서 하나의 방향성이란 게 뚜렷하게 있다면 그것들이 다 모인다고 생각했다. 하려고 했던 것들이 모여 하나의 길을 가고 있던 거다. 다른 뮤지션도 그럴 테지만 전업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 경제적인 이유는 물론이고, 가끔 이렇게 한 우물만 판다는 게 참 지루할 때도 있고 싫증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전업 뮤지션이 흔치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 방향성만 잃지 않는다면 모든 게 내 음악 안으로 다 모일 거라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음악을 하다 보면 자기가 원치 않는 걸 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좌절하고 불만인 뮤지션들을 많이 만났고 나도 그러했었는데, 앨범 작업을 하면서 ‘분명히 모인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분명히 교차 지점이 생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확신이 생겼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앨범의 모든 트랙이 아니 그렇겠냐마는, 작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다면 어떤 곡인가?
남예지: 진짜 찾기 어렵다. 흔한 얘기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다 너무나 소중한데, 1번 트랙인 ‘가시리’ 같은 경우 다른 곡의 작업이 편곡을 마치고 합주하며 다듬는 상태로 이뤄졌다면, 이 곡은 피아노 리프나 화성 같은 걸 볼 때 느슨한 약속만 정해놓고 합주하면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연주한 곡이다. 본질을 따지는 게 웃기긴 하지만 어찌 보면 재즈의 본질에 좀 더 가까운 일이지 않았나 싶었다. 다른 곡보다는 더 순간에 충실하게 완성한 음악이란 생각,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는 이유로 ‘가시리’가 특별하다. 이 곡을 만든 식으로 작업해도 좋겠다는 전망을 갖게 한 곡이기도 하다. 현재 일제강점기 활동한 저항 시인들의 시문학을 음악으로 풀어보는 걸 생각 중인데, 그때도 합주나 녹음을 진행하면서 생겨나는 멜로디를 녹음해도 좋겠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작업 방식에 대한 인상이 생긴 곡이어서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원래는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새야새야’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유통사 대표와 프로듀서 이원술이 “‘찔레꽃’이야말로 K-스탠다드다.”라는 의견을 주어 ‘찔레꽃’을 첫 타이틀로 하고, 서브 타이틀로 ‘새야새야’를 채택하게 되었다.

 

남예지 - 찔레꽃 (Live Video)

 

작업을 하면서 자주 찾아 듣는 음반이나, 영감을 느끼는 아티스트가 있는가?
남예지: 매번 같은 음반을 찾아 듣진 않지만, 이스라엘의 재즈 음악을 즐겨 찾는다.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이나 샤이 마에스트로(Shai Maestro) 같은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이스라엘 뮤지션들은 신기하게 재즈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활동하는데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색채를 항상 잃지 않고 재즈 속에 묻어나게 만든다. 그런 사운드도 좋고 그들이 만드는 돈독한 공동체성도 그렇다. 아비샤이 코헨의 경우 이스라엘의 젊은 뮤지션들을 본인의 밴드에 기용하여 같이 연주도 하는데, 그런 부분이 좋다. 이스라엘 재즈 하면 떠오르는 사운드가 있다. 사실 한국 재즈를 말했을 때 우리만의 어떤 것이 있냐 묻는다면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더 와닿는 것 같다. 지난 2009년도에 아비샤이 코헨이 ‘Morenika’가 수록된 [Aurora]를 발매하여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와서 해당 곡을 연주했는데, 그 날의 자라섬 공연을 잊지 못한다.

 

최근까지 굉장히 분주한 공연 일정들을 소화했다. 근래에 섰던 무대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어떤 건가?
남예지: 작년 12월 군산에서 ‘옛날 노래’라는 타이틀로 공연했다. 공연 장소가 군산회관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다른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리모델링한 공간이라 객석이 따로 있지 않고 신기한 형태로 된 공간이다. 데뷔하고 얼마 안된 2003~2004년에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와 이곳에 와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20여 년 만에 처음 방문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옛 기억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때 임인건 선생님께서 ‘바람이 부네요’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셔서 원곡자의 연주에 나의 목소리를 얹는 영광을 누렸는데, 복받치는 게 있었다. 가사도 그러했고, 그땐 앨범을 내고서 이런저런 홍보 활동을 했던 시기였는데 앨범이 나와서 행복한 것도 있었지만 힘든 것도 많았다. 혼자 여러 사무적인 일들을 다 처리하려니 내가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일인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싶었고 지쳐있었는데, ‘바람이 부네요’를 부르며 위안이 많이 되어 그날이 기억에 남는다. 공연 뒤풀이도 군산회관 송성진 대표께서 기획하셨는데 뷔페 형식으로 음식도 직접 다 준비하셔서 매우 특별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귀한 경험이었다.

 

차후 계획이 궁금하다.
남예지: 앞서 이야기한 어문 저작물들을 재즈로 커버하고 싶고, 반드시 할 것이다. 더구나 올해가 광복 80주년이기에 이에 맞춰 내려고 했는데, 해당 지원사업에 떨어져서 사비로 해야 하기에 많은 고민이 있다. 그래서 해당 시기에 맞춰 완성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 나오더라도 유의미하기에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즈에 관한 연구를 1년에 한 번씩은 하자는 목표도 갖고 있다. 그것은 재즈뮤지션의 직업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이다. 2020년 코로나 중에 ‘재즈를 불러봅시다’라는 오픈 톡방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재즈 비전공자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방이다. 사실 이 방을 통해서 나조차도 갖고 있던 재즈에 대한 통념인 ‘재즈는 배워야하고, 전공자의 음악이기에 진입장벽이 높은 이론적인 음악이어야 한다’라는 선입견을 몇 년에 걸쳐서 깨 주신 분들을 많이 만났다. 다양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다들 깊게 재즈를 탐험하고 있다. 요즘 어떤 뮤지션들이 뜨거운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분들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니아이면서도 실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재즈의 저변이 이분들 덕에 확대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재즈의 대중화나 저변 확대라는 게 정말 재즈를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희망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얼마 전 공연도 했는데, 브랜드라 하기엔 거창하지만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보통의 재즈 취미를 갖고 계신 분들과 함께 ‘재즈를 불러봅시다’를 전개하려 한다.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과 남예지의 재즈를 접하고 있거나/접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한다.
남예지: 굉장히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고 모든 음악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 재즈는 연주되는 순간마다 각 순간의 유일함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음악인 것 같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앨범을 듣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지만 라이브를 들으러 온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재즈의 순간이 만들어진다. 그 순간 음악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흘러갈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누군가와 같이 하나의 의미로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즈 연주는 연주하는 사람들만이 연주의 주체가 아니라고 본다. 연주자와 관객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가깝기에 연주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 하나 하나, 구두로 말하는 모든 것들이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연주가 발생하는 건 연주자들뿐만이 아닌, 함께 순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라이브의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재즈 연주를 많이 보러 다니고 그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남예지 - 새야 새야 (Live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