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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ARTICLES/ISSUE NO.10

DAMI IM, 메이저 데뷔 11년 만에 모국 팬들을 위한 첫 단독 공연을 가진 인터내셔널 팝 디바

INTERVIEW: DAMI IM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 프랜차이즈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어온 엑스 팩터(The X Factor)의 오스트레일리아판 오디션 쇼의 시즌 5에서 우승자가 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 팝 스타가 된 한국인 여성 뮤지션 임다미(Dami Im)는 이후 현재까지 6장의 정규 앨범과 몇 장의 EP를 통해 적어도 호주 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3월, 그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낸 영문 자서전에 이어서 한국에서 출간하게 된 수필집 [더 히어로(The Hero)]를 발매하던 그 날, 그녀는 자신의 출생지 인천에서 첫 단독 공연 무대를 한국 팬들에게 선보였는데, 그 현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가졌던, 그간 그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나눈 진솔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인터뷰 진행, 정리   김성환

사진 제공   DAMI IM    진행 협조   박강원 

 

 

만나게 되어 반갑다. 그간 한국 방송에서 꽤 얼굴을 봤었기에 단독 내한공연도 여러 번 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문학시어터의 공연이 한국에서의 첫 단독 공연이다. 드디어 태어난 나라에서 첫 단독 공연을 하는 소감이 어떠한 지부터 일단 묻고 싶다. 
임다미: 
설레는 마음이 가장 큰 것 같다. 너무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는 것을 몸소 느꼈는데, 직접 찾아뵐 기회가 없었다. 마침내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마치 팬 미팅같은 느낌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설렌다.  

노래를 부르는 것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시점은 언제부터였나?
임다미: 
9살 때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갔는데, 현지 학교생활에서 영어도 잘 못했고, 문화충격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 조회 시간에 피아노를 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워봤던 경험으로 해봤는데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이 “저 친구도 잘하는 게 있구나!”하는 반응을 보이며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더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했고, 그래서 피아노 전공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그 중간에 아버지께서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아주시고 스스로 노래 녹음을 해보라고 한 게 출발점이었다. 처음엔 잘 부르지 못해서 더욱 노력했고, 녹음하면서 서서히 실력을 늘렸다. 그래서 대학교 때 본격적으로 프로 가수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언급한 대로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으로 이민 갔다. 그래도 한국 생활을 좀 하다가 낯선 땅에 가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 학교나 생활에서 적응이 힘들지는 않았나?
임다미: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동양인이 나와 내 동생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그 사실이 매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 대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브리즈번은 진짜 시골이어서 공기도 좋고 자연 속에서 사는 환경이었다. 어쩌면 성장에는 천국 같은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적응해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수학은 (한국에서 미리 공부한 양이 있어서) 그 곳 기준으로는 잘 한 편이지만, 영어를 익히는 게 조금은 어려웠다.

한국인과 세계에서 임다미라는 보컬리스트의 존재를 제대로 알린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엑스팩터] 시즌 5에서 우승을 하면서였다. 오디션 쇼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우승까지 가리라고 당시에는 예상했었나? 그리고 우승자가 된 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어땠나 듣고 싶다. 
임다미: 
사실 우승을 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최근 에세이집을 쓰면서 기억들을 되새겨봤는데, 처음에는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내가 고음역을 사용하는 가창을 많이 한 게 아니라서 그냥 편집되지 않고 1-2회 정도 화면에 나오면 나중에는 로컬 무대에도 나가기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솔직히 탈락이 되었다가 다른 통과자가 중도 포기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은 후에는 이 기회를 반드시 잡겠다고 결심하고 더 경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승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우승자가 된 후, 얼떨떨했고 내 앞에 놓은 변화에 대해 두려움도 컸었다. 그전까지는 이민자로서 작은 교회 커뮤니티에서 작은 삶을 살았던 내가 공중파 TV에서 얼굴이 알려지고, 매니지먼트, 음반사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 사회생활을 하게 되니까 그 두려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승 후에 발표했던 2집이자 메이저 데뷔작 [Dami Im]은 오스트레일리아 앨범 차트 1위를 했었고, 현재까지 발표했던 정규 앨범들 중 4장이 오스트레일리아 앨범 차트 10위권에 진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 시장에서는 꾸준히 스타덤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의미인데,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중이 임다미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본인이 느끼기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임다미: 
내 팬클럽의 이름이 ‘다미 아미(Dami Army)’다. 그 팬클럽 분들이 지금도 꾸준히 응원을 해주시는데, 우승한 직후에도 그분들에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와 같은 부족한 사람들도 잘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우승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내 노래를 통해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음악을 만들고 곡을 쓸 때도 내 이야기와 내 진심을 담고자 하기에, 그 속에서 본인들이 용기를 얻으며 좋아해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2016년에는 카펜터스(Carpenters)의 곡으로만 이뤄진 커버 앨범 [Classic Carpenters]를 발표했다. 팝 역사 속 다른 수많은 디바들 가운데 카펜터스,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가 부른 노래들만을 선택해 음반을 내겠다는 계획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녹음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임다미: 
카렌 카펜터의 목소리가 굉장히 순수하고, 꾸밈없고 편안하다고 생각하고, 곡의 멜로디는 지금 들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좋은 곡은 시간이 지나도 명곡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항상 한다. 그래서 비록 내가 그녀와 같은 음색은 아니지만 꾸밈없고 기교를 넣지 않은 편안한 가창으로 이 노래들을 부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부모님도 카펜터스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셨기에 선택했던 이유도 있다. 녹음하면서 기존의 버전의 보컬을 따라 하지 않고 나만의 소리로 녹음하되, 그 곡의 취지에 맞게 (보컬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편곡에서도 기존 버전과 같지 않지만 너무 낯설지 않게 조율해가는 과정에 가장 신경 썼다. 특히 한국에서는 ‘There's a Kind of Hush’를 방송에서 많이 좋아해 주셨던 것 같은데, 그 곡이 아마도 기존 버전과 다르게 편곡되었던 트랙이고 내 방식으로 가장 많이 해석했던 곡이었다. 

아마도 보컬리스트 임다미에게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순간은 싱글 ‘Sound of Silence’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에 2위를 차지한 일이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사실 이 가요제의 인기가 크지는 않지만, 전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주목하는 이 무대에 섰던 경험은 어땠는지 매우 궁금하다.
임다미: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로 선발되어 이 대회에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일단 등수라는 건 한번 결정되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에, 모두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43개국에서 나온 대회에서 좋은 순위를 과연 얻을 수 있을지 매우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순위가 너무 잘 나와서 기뻤다. 한편으로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를 달고 나간다는 사실이 출전할 때는 심적으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기회를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제공해 준 것이기에, 그 이후에는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두 정체성에 주어진 역할을 다 잘해야겠다는 맘으로 활동했다. 실제로 2022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의 (관공서, 방송용) 레코딩을 맡기도 했다.

 


2021년 발표했던 6집 [My Reality](2021)은 커버 곡들이 꽤 있었던 전작들과 달리 드디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임다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곡은 주로 언제, 어떻게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몇 곡 정도를 만들어 놓았을지도 궁금하다.
임다미: 
곡은 틈날 때마다 쓰려고 하는데, 사실 몇 년 전 출산 후 육아를 하는 상황이라 아기가 자면 일을 하는 편이지만 곡을 많이 쓸 시간은 부족하다. 근래에는 음반을 여러 장을 냈었기에 올해에는 음반 작업보다는 공연을 더 많이 하면서 조금 더 이후의 음악 작업 계획을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더 자주 공연을 갖고 싶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면서 후속작을 고민하려 한다. 

작년에 발표된 EP [In Between]은 음반 커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양식 머리 장식과 한복과 전통 신부 화장이 결합된 이 사진은 두 나라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자신의 형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커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임다미: 
앨범의 전체 콘셉트가 음반 제목처럼 항상 내가 ‘사이에 끼어 있는’ 불편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양쪽 국적을 오가고 있고, 교회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활동하던 내항적이었던 내가 밖에서는 대중적 아티스트로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임신 때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거치는 하나의 인생의 ‘전환’과정이었기에 그 혼란의 시기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미지로 만들어야겠다는 과정에서 이 커버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현재까지 자신이 발표했던 노래들 가운데 본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3곡만 골라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 준다면?
임다미: 
먼저 ‘Sound of Silence’는 내겐 아티스트로서도 전환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내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 곡이라 좋아한다. 그리고 최근 곡인 ‘Collide’는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새로운 계절을 용기있게 맞이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어서 마음에 와닿고 부를 때마다 뭉클해지는 곡이다. 세 번째 곡으로는 ‘Gladiator’를 꼽고 싶은데, 부를 때마다 힘이 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곡이라 관객들과 함께 부를 때 더 힘이 나는 곡이다. 

한국의 컨텐츠 ‘복면가왕’은 세계적으로 그 포맷이 수출됐는데, 한국의 해당 방송 출연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판 프로그램에서도 우승자가 되었다. 항상 궁금한 건 그 무거운 분장을 하고 노래하는게 쉽지 않을 텐데, 그 기간이 힘들지는 않았나?
임다미: 오스트레일리아판 ‘Masked Singer’에서는 특별히 아주 무거워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분장하고 나면) 앞도 잘 보이지 않아서 무대에서 움직이며 노래하는 게 많이 힘들다.

개인적으로 보아의 팬이라고 들었다. 이제는 BTS 이후 여러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보기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직접 보게 된 케이팝의 인기는 어떻다고 보는가?
임다미: 케이팝 가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오면 공항에서부터 많은 인원이 기다릴 만큼 열성적인 팬들도 있지만, 여전히 아예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극과 극이지만 그래도 이 쪽 음악을 듣는 팬층이 단단해진 것은 사실이다. 언론에서도 이제는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은 맞는 것 같고, ARIA 차트(오스트레일리아 공식 음악 차트)에서도 여러 곡들이 순위에 들어가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임다미의 음악을 좋아하고 지지해온 모든 음악 팬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한다. 
임다미: 지금까지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한국에 많이 찾아와서 공연할 계획을 갖고 있으니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DAMI IM - COLL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