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EATURES+ARTICLES/ISSUE NO.8

류세라, ‘아름답게 잊혀질 때까지’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후배들의 등대가 되고 싶다

Interview: From Idol to Singer-Songwriter (2)

‘K-POP 아이돌 그룹 멤버’에서 솔로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여성 뮤지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로코모션의 2023년 특별기획 인터뷰 시리즈의 두 번째 주인공은 류세라. 그녀는 2000년대 말 그룹 나인 뮤지스(Nine Muses)의 멤버였다가 이제는 솔로 싱어송라이터로서, 또한 K-POP 해외팬들을 위한 유튜버로서 활약 중이다. 아티스트 사정상 서면 인터뷰로 진행되었지만, 준비한 모든 질문에 매우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변해주었다.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속했던 공간에 있는 후배들에게 그녀가 하고픈 말들을 들어보자. (* 지면에 다 싣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풀 인터뷰를 이 페이지에 공개합니다.)

인터뷰 진행, 정리    김성환
사진제공    류세라(OTCO)

나인뮤지스를 거쳐 이제는 싱어송라이터/유튜버 등으로 활동중인 류세라

 

먼저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사실 연락을 취하면서 직접 답신을 보내서 살짝 놀랐다. 실제로 ‘OCTO’라는 1인 기획사를 2018년부터 설립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본인의 활동 스케줄을 다 본인이 직접 챙기고 계시다고 봐도 되는가? 아니면 고정적으로 활동을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곁에 있는 건가?

류세라(이하 ‘류’): 1인 기획사라기보다 정확한 명칭은 ‘공연기획 사업자’가 맞을 것 같다. 공연하고 팬분들과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시작을 했던 것이고, 스케줄은 대체로 직접 챙긴다. 다방면으로 스케줄이 잡힐 때 도와주는 언니도 있고, 제가 혼자 소화할 때도 있고,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른 기존 레이블에 다시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보다 1인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기로 결정한 이유, 그리고 6년째 이렇게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과거 그룹 활동에 비해 장점이나 좋았던 점, 반대로 어렵거나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설명해줬으면 한다.

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불가피한 절차였기 때문에 시작한 부분이었지만 내 성향에 맞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대형 기획사를 나와서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는 목표를 뚜렷하게 가진 적도 없고, 나를 이렇게 마케팅하고 싶다는 비전도 없었다. 그래도 내 숨결에 맞춘 속도로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인 것 같다. 단점이 있다면 수익구조상 착한 회사라고는 보기 어렵다.

걸그룹 나인뮤지스 활동 시기에 소속 그룹의 나름의 안정된 히트곡 행진을 이끌어가는 데에는 작곡팀 스윗튠(한재호-김승수-송수윤)의 도움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류세라가 기억하는 스윗튠은 어떤 분들이었고, 같이 음악작업을 하며 (혹시 있다면) 어떤 부분이 배울 점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혹시 개인적으로 그룹 시절 곡에서 가장 지금도 애착이 있는 스윗튠 트랙이 있다면 어떤 곡일까?)

류: 스윗튠은 저한테 친정같은 곳이었다. 내 생일날에도 저는 스윗튠 스튜디오에 가서 노래 연습을 하고, 밥을 먹고, 오빠들이 추천해준 만화를 보고, 함께 자전거 타고, 내게는 언제든지 그렇게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작가분들과 다르게 타이틀곡을 함께 구상하기도 했었고, 그룹 멤버들의 의견도 많이 물어보셨다. 개인적으로 ‘Glue’ 대신 저희 타이틀이 될 뻔했던 ‘Strom’(가제)이라는 곡이 가장 애착이 남는다. 애착보다 미련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단연 빼놓을 수 없는 ‘Dolls’도 있다. 스탭들이 꽤 반대를 했다고 들었는데 멤버들과 처음 들었을 때부터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돌 걸그룹 생활을 끝내게 되면서, 결국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선택했다. 노래를 작사-작곡하는 것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언제부터 자신의 곡을 쓰기 시작했나? 혹시 그룹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자신의 곡을 쓰고 있었나?

류: 고3 캐나다 학창시절에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작곡(Composition)수업에서 큐베이스(Cubase: PC용 샘플링-믹싱 프로그램)를 접한 것이 유일한 경험이었지만 프로그램 기초 단계에서 악기 녹음을 하는 과정까지만 듣고 심화 과정을 듣지 않았다. 입시 준비 때문이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연기자 계약서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곡을 쓰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활동 도중 내가 할 줄 아는 걸 정리해 본 적이 있어요. 음악적 지식은 부족하지만, 필드 경험이 있었으니까 무작정 독학으로 큐베이스와 로직(Logic)을 파기 시작했다. 활동 말기부터 곡을 쓰게 되었던것 같다.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 이후 가장 먼저 음악팬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공개한 방법이 유튜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튜브를 활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었나 궁금하다.

류: 그 시절엔 엔터 쪽에서 유튜브를 개인 방송 취급하던 때였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중파에서 활동하는 것도 무서웠다.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는데, 달리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채널을 만들게 되었고, 소통하는 가장 빠른 창구가 되어줬다. 유튜브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싱가폴, 홍콩 등으로 유튜버 모임에도 참석하기도 하고,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 열심히 영상들을 개재했다. 

 

첫 솔로작 [SERen:Ade](2015)의 커버


첫 번째 솔로작 [SERen:Ade](2015)의 음악 제작 과정, 그리고 심지어 저작권 등록과 앨범 포장, 배송까지 직접 하는 모습을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였던 채널 영상이 당시에 조용히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완성된 곡을 공개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그 과정을 다 영상으로 보여주겠다고 당시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류: 이것 또한 소통의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인데, 날 기다려주시는 팬분들을 위한 ‘선물’이 테마였던 만큼 개개인에게 더 의미 있는 패키지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단순히 CD를 구매하고 간직하는 것보다 그 CD가 내 손을 거치는 과정을 직접 보실 수 있으면 더 값어치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의도로 시작했다. 촬영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소위 말하는 ‘구린 음악’, ‘구린 아티스트’를 사랑해주는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그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용기 내서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첫 음반에 담긴 노래들은 장르 면에서 꽤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Only One’ 같은 곡은 힙합 비트를 활용한 곡이었고, ‘굳이 사랑이’는 정갈한 팝 발라드, ‘보다’는 인디 팝/록의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평소에도 특별히 장르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갖고 계신 것이라 봐도 될까? 평소의 개인적 음악 취향은 어떠할지 매우 궁금하다.

류: 신기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재즈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도 모든 장르의 재즈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몇몇 보컬의 음악만 좋아했다. 제인 모나이트(Jane Monheit)의 음악에 매료되어서 모든 앨범을 소장하고 매일 매일 들었다. 물론 대중음악을 하면서 조스 스톤(Joss Stone)의 음악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저에게는 장르를 좋아하는 섬세한 귀가 없어서 보컬이 좋으면 그 음악까지 좋아하게 되었던 거 같다. 음악적 취향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직도 믹싱 모니터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저음역(low range)이 잘 안 들려서 피드백이 힘들다는 것이다. 여자 보컬이 가지고 있는 중간음역과 고음역(mid & high range)만 듣고 멜로딕한 부분에 집중하는 게 제 약점이기도 한 것 같다. 

혹시 첫 앨범을 정식으로 다시 음원 사이트에서 유통할 생각은 없나? 

류: 아이가 띵가띵가 장난감 피아노 치는 아마츄어스런 느낌이 아직도 부끄러워서.. 계획이 없다. (웃음) 사실 다시 리믹스를 할까 고민도 했는데, 그 앨범에 수록된 12곡이 BPM도 컨시스턴시(Consistency)도 안 맞고, 키도 왔다 갔다, 정말 엉망 그 자체다. 

 

싱글 [Stay Real](2018)의 커버


2018년 발표했던 싱글(EP?) [Stay Real]에 담겼던 ‘나와 걸어줘’는 어떤 의미에서 류세라의 음악 활동에 대한 태도와 지지해준 팬들을 위한 노래란 생각이 당시에 들었다. 이 곡은 어떻게 만들게 됐고, 그룹 시절부터 이후까지 꾸준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팬들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류: 내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모든 동기는 팬들이다. 아직도 다 접고 돈 버는 정규직(?)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든다. 실제로 학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마지막 학기 공부 중이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팬들 때문에 아직도 곡을 쓴다. 어떤 이는 미련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발악이라 표현하겠지만, 그냥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생각이다. 

2018년에 오랜만에 음악방송 무대에도 나가 불렀던 ‘한강’은 자신의 곡이 아니라 다른 뮤지션(SJ)의 곡을 받았다. 어떤 계기로 이 곡을 선택하게 되었나?

류: 음악방송을 그 곡으로 섭외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초이스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던 노래였다. 신곡이기도 했고, 내가 쓴 곡이 아니라서 부끄러운 마음도 크지 않았다. 가사를 쓰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는 속마음을 표현하는 가사를 쓸 정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기여서 오히려 용감하게 출연했다. 

대략 한 3년 전부터 뮤지션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다른 K-POP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해외 KPOP 팬들을 위해 영어로 소개하고 리뷰하는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가끔은 직접 인터뷰하는 컨텐츠도 있었다. 이 컨텐츠를 통해 구독자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영상 인터뷰에서 ‘그들과 (해외) 팬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면 어떨까’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좀 더 그때의 심정을 자세히 들어보고 싶다.

류: 지금 생각해보면 큰 포부이자 교만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선배로서, 그리고 같은 필드에서 활동하는 동료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독특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팀을 꾸려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재정 뿐 아니라 개인적 안전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내가 조금 더 커지고 넓어져서 진정으로 빛날 수 있는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지금 가요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은 환경적인 서포트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인데, 다양한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변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저 또한 그 변수의 하나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그녀와 유사한 상황이었던 걸그룹 출신의 여성 보컬들끼리의 경연 프로그램 [미쓰백]으로 오랜만에 류세라는 KPOP 형태의 무대에 섰다.


MBN의 [미쓰백]을 통해서 어떻게 보자면 (조금씩 결은 달라도) 솔로 뮤지션으로 독립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여러 동료 여성 뮤지션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이 프로그램엔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했고, 방송 이후 함께 출연했던 뮤지션들 가운데 좀 더 친해진 분들이 있을까?

류: [미쓰백] 출연진 그리고 멘토분들과는 아직도 너무나 친하게 지내고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은 당당하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고, 내 사랑 또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다. 다시 한번 “지영 언니, 은이 언니, 가영, 수빈, 레이나, 유진, 나다, 소율아 사랑해요!”

이제 본격적으로 2023년 새로 발매된 2편의 디지털 싱글 작품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유튜버 활동 때문에 한동안 본인의 신곡들이 공개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1달 간격으로 2편의 결과물이 나온 셈이다. [No Thanks]와 [Vertical]에 담긴 곡들은 언제부터 작곡해놓은 곡들이고, 언제부터 실제 레코딩에 들어가 완성한 결과물인가? 그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다.

류: 몇몇 곡들은 2~3년 전쯤에 만들어 놓은 곡들이지만 대부분은 하루 아침에 쓴 곡들이다. 제가 이전의 앨범들과 공연들을 하면서 사실 실패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수익적인 구조. 돌파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또 하나는 제가 고민하고 노력해도 늘지 않는 음악적 역량. 두 가지가 발을 묶었다. 이번에 곡을 릴리스 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내 직업은 대중에게 강렬하고 깊이 각인되는 것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아름답게 잊혀지는 것이다.’였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곡이 써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커리어가)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 본 동료분들이 많을 것 같다. 실패의 순간은 엔터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니 모든 인간에게 당면할 일일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인생이 끝나는게 아니잖나. ‘내 천재성을 뽐내고 싶어서 곡을 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곡을 내는 것이 아니라면, 돈 쓰지 않고 즐겁게 해보자’라는 사고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게된 후 곡이 쉽게 써지더라.  

 

[No Thanks] EP 커버 이미지


두 작품집에 [No Thanks]와 [Vertical]라는 타이틀을 붙인 각각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두 작품집이 갖는 주제적, 또는 음악적 차별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

류: [No Thanks]라는 표현엔 살짝 반항 섞인 어투가 섞여 있지 않나?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그리고 스스로에게 했던 걱정 어린 비난을 대상으로 낸 앨범이라 그렇다. “응. 걱정해 주는 거, 내가 부족한 거 다 아는데, 이제 됐어. 그냥 들어.”의 의미가 되겠다. [Vertical]은 앞으로 각 곡들이 만들어 나갈 세계관의 구조를 살짝 설명해주는 앨범이다. 더 설명하면 오히려 어려워질것 같긴 한데, 간략히 설명하자면 앞으로 내는 모든 곡들은 각각 다른 세계 속에 속하고, 그 세계 속에서 노래하는 내 자신이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 정체성과 그녀가 속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구도를 만들었다. 

[No Thanks]에 수록된 ‘Jungle’이나 [Vertical]의 첫 곡 ‘Burger Ate Pizza’ 등을 들으면 이제 일렉트로닉 계열의 사운드 작업에도 관심을 높였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 속 비트나 트렌드가 있다면 어떤 쪽일까? 혹시 영향받고 있는 해외나 국내 인디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있다면?

류: 놀랍게도 아직 일렉트로닉 장르의 음악들이나 비트를 전혀 즐겨 듣지 않는다. 다만 함께 작업하고 있는 RYUSERALOVER(80만 정도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매쉬업(Mash-up) 유튜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나온 작품들이다. 앞서 내 단점이 듣는 귀가 없다는 거라고 말했던거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장점이 생겼다. “탑라인과 가사에 이런 분위기로 곡이 변하면 어떨거 같아?”라고 물어보면 단연 옵션들을 오픈마인드로 고려해준다. 신기하게도 ‘Burger Ate Pizza’는 들을수록 좋은 음악이라 언젠가는 일렉트로닉 비트도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없는 이상한 싱어송라이터라 만들어내는 음악들도 장르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다. 

두 작품집을 모두 합쳐 개인적으로 음악적인 부분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곡은 [Vertical]의 ‘Gethsemane’였다. 곡의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나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내용이라서.. 이 곡을 만들게 된 과정을 자세히 듣고 싶다. 곡의 제목은 성서에서 나온 장소 이름이고 ‘고난’을 상징하는 의미라... 더 궁금하다.

류: 이 노래를 좋아하다니 정말 기쁘다. 사실 ‘겟세마네’는 ‘올리브 동산’이라는 뜻이고 히브리어로, 성경에 등장하는 장소가 맞다. 이 또한 앞서 이 앨범에 대해 말했던, 또 다른 유니버스에 속한 또 다른 내가 그 시간을 묵상하고 상상한 노래다. 개인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에 눈물에서 피가 세어날 때까지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던 장면을 비내리는 언덕으로 상상했고, 그곳에서 옷이 비에 젖어 영문도 모른 채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을 형상화하며 가사를 써내려갔다.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없어서 교회 사람들은 별로 안좋아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막막하고 답답한 오늘과 내일을 표현한 곡이다. 약을 먹어야 버틸 수 있는 하루하루가 몇 년째 계속되면 생각의 덩어리는 사라지고 감각의 조각만 남게 되는 거 같다. 

[Vertical]에 수록된 ‘아이(i)’는 어린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석해도 될까? 인간 류세라의 어린 시절과 노래 부르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

류: 그때의 나는 어떤 의미에서 ‘관종’이었다. 어렸을 때 외조부모님이 저를 키우셨는데 계모임에 데려가면 걸음마 할 때부터 노래를 시키셨다. 저는 다 제 노래를 듣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기대하고 대기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습관이 무서운 것 같다. 천진난만하고 개구쟁이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No Thanks]의 ‘거울’과 [Vertical]의 ‘기다리는 일’ 등 차분한 팝 발라드들이 솔로 활동 시작 이후의 류세라라는 보컬리스트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곡이라 생각된다. 특히 ‘거울’은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곡을 만든 계기나 과정도 듣고 싶다.

류: 거울은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다. 정확히 봤다. 어렸을 때부터 울면 더 많이 (부모님께)혼났다. 눈물은 수치스러운 거라고 배웠다. 강한 척해야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도 눈물은 안 멈추더라. 그래서 곡을 다시 쓸 용기를 내게 되면서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쓴 노래 중 처음으로 내 속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아닌가 싶다. 

 

##Related Playlist : 류세라 솔로곡 베스트 - Curated by LOCOMOTION(링크를 클릭하세요!)
 

Ryu Sera Best Playlist

 

www.youtube.com

 

[Vertical] EP 커버 이미지


출연했던 여러 영상들 속에서 (본인의 경험을 포함하여) K-POP 씬 속에서 아이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유튜브 채널로 현재의 K-POP을 꾸준히 소개하고 때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나름의 도움을 주고픈 마음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현재 K-POP산업 속에서 가장 먼저 개선되기를 바라는 부분, 그리고 본인이 겪었던 그 세계에 현재 있는 후배들을 만나면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류: 아직도 고민한다. 진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후배들을 만나면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어딜 고쳐야 좋을지를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게 오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네 인권은 발전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걸그룹의 인권은 어디까지가 권리이고 어디까지가 상품성을 망치지 않는 선인가. 한때는 "너는 무조건 지금 그대로가 아름다우니 살 빼지 말고 건강하게만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살얼음판을 걷는 그들에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었던 내게 그런 말은 그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K-POP 안에서 인생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한 번쯤 질문을 해보고 답을 내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진짜 가치는 어떤 것이며 아름다움과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이런 것을 한 순간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재결합 같은 이벤트로, 또는 실제 개별 활동의 형식으로 K-POP 씬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30대 여성 뮤지션들도 슬슬 늘어가는 느낌이다. K-POP의 포맷을 이어가면서 댄스 팝 뮤지션으로 활동하건, 아니면 싱어송라이터로서 다른 장르로의 음악적 전환으로 활동하건, 한국에서 여성 뮤지션으로서 더 오래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늘어나려면 어떤 방향으로 대중음악 시장이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류: 예전보다는 이미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의 국민적 지적 수준을 믿으니까.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극빈곤층이 되었건, 동물이 되었건, 어린이가 되었건, 여성이 되었건, 전반적으로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여성 뮤지션의 활동 범위나 활동 기간도 개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걸그룹에서 활동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여성은 그저 성적인 상품이었는데 지금은 개선의 여지는 여전하지만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류세라의 활동을 꾸준히 지지해온 음악 팬들에게, 유튜브의 컨텐츠를 보고, 그리고 이번 신보를 계기로 당신의 음악을 듣게 된 리스너들에게 뮤지션으로서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포부를 얘기해주면 좋겠다.

류: 거창한 계획과 포부는 없다. 살아있는 날동안 살기 위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아름답게 잊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우리네 아티스트들도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잘 잊혀질 수 있게 여러분도 도와주었으면 한다. 결국에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니까.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 분들게 감사하고, 깊이 있고 예쁜 질문(?)을 해주신 로코모션 편집부에게도 감사한다. 

 

추가: 이 인터뷰는 5월 경에 진행되었고, 이후 얼마 안되어 그녀의 올해 세 번째 EP [Perfect Sqaure]가 디지털로 발매되었다. 역시 아래의 링크에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음악들을 들어볼 수 있다. 

 

류세라 - Perfect Square (EP) 들어보기 (YOUTUBE) 

 

Perfect Square -digital single

Sera Digital Single 4th

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