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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ONLY CONTENTS/INTERVIEW

카코포니, 음악을 만들며 트라우마를 응시할 용기와 극복의 길을 찾아가는 싱어송라이터 (Part 1)

 

2018년 10월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데뷔 앨범 [和(화)]를 들고 나타난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본명 김민경)는 지금까지 자기 삶의 경험 자체를 꾸준히 한 장씩 음반으로 녹여냈던 뮤지션이다. 본격적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음악 작업도 어머니의 투병과 사망에서 시작되었기에, [和]에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자신과 삶이라는 것 자체를 성찰하는 음악들을 담았고, 2집 [夢(몽)](2019)에서는 연애의 과정과 파국을 통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성찰을 담으며 음악으로 자신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통한 성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진 EP [Reborn](2021)을 통해서 그녀는 ‘주체적 자신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선포하고, 드디어 정규 3집 [DIPUC](2023)을 통해서 세상의 통념적 사랑의 공식을 전복하는 내용의 노래들을 들고 음악 팬들에게 돌아왔다. 신보 발매 이후 3주 정도 된 2023년 12월에 망원동에서 지난 5년간의 그녀의 음악 여정과 새 앨범에 대해 꽤 긴 시간 나눈 대화의 내용을 공개한다.

 

인터뷰 진행, 정리    김성환

사진 제공   카코포니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 일단 최근 정규 3집 [DIPUC]이 발매되었다. 일단 새 앨범을 완성하고 발표하게 된 현재의 소감이 어떤지 들어보고 싶다. 
카코포니: 사실 믿기지 않고, 벌써 오래된 일이란 생각까지 든다. 발매와 함께 공연, 작은 전시까지 우당탕 함께 진행하고 난 후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의 공연도 현지에서 보고, 홋카이도에 가서 온천 여행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다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시간이 오래 지난 느낌이다. 원래는 나는 앨범을 내고 나면 깊은 우울함에 빠졌던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건강한 느낌이다. 원래 10~11월에 앨범을 내면 다음 해 2월까지 죽어있는, 겨울잠 자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2018년에 음반으로 데뷔한 것이니 올해로 뮤지션으로 활동한 지 6년째다. 그 시간 동안 정규 앨범만 3장, EP 1장을 냈으니,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인디 뮤지션들과 비교해도 정말 많은 작품을 낸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카코포니: ‘동력’이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쌓여있던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오다 보니, 그게 나는 괜찮다고 여기고 있다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강력한 계기가 생겼다. 한 번 구멍이 뚫려버린 후, 스스로 ‘이런 이야기도 내 인생에서 말했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쌓인 이야기들이니까,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음반을 앨범 단위로 들었던 사람이다 보니, 싱글을 어떤 마음으로 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물론 지금의 음악 비즈니스에서는 싱글이 더 합리적 방식이란 건 알지만, 싱글의 형식으로는 어떻게 완결지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내게는 앨범 단위로 (음악 작업을)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카코포니의 바이오그래피를 돌아보게 되면 결국 본격적인 음악적 활동의 출발점으로 ‘어머니의 사망’이 언급되게 된다. 그 사건 이전부터 원래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일정 부분 갖고 있었나? 
카코포니: 너무 어렸을 때부터, 사고를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무대에 서는,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그 당시 좋아하는 가수도 없었는데도, TV에서 나오는 사람들 보면서 나는 저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노래로 하기보다는 춤추는 무대를 하면서 그런 욕구를 풀었던 것 같다. 대학교 때도 가요제에 나간다던가, 아니면 밴드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소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사망이란) 사건으로 인해 ‘펑’하고 터져버렸던 것 같다. 


1집 [和]를 처음 들었을 때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대중에겐 신인이라고 봐도 될 뮤지션이) 이 정도의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거의 편곡도 본인의 힘으로 완성해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따로 실용음악을 전공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작곡하는 법, 편곡과 녹음하는 법 등은 어떤 방식으로 배워갔는지 궁금하다. 
카코포니: 어렸을 때 피아노 정도 배운 건 있었지만, 화성학 등의 음악적 지식은 전혀 아는 게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많은 것들이 들리지만, 그걸 곡으로 완성할 생각도 안 했고, 내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가 어머니가 아픈 후부터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맥북을 사서 로직(Logic)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혼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1주에 1번 다른 간병인이 오시는 날에 개인지도를 받았다. 인터넷으로 수소문해서 K-POP 관련 일을 하시는 분께 배웠는데, 1~2개월 배우면서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많으니 지식이 들어오자마자 응용을 바로 하게 되고 바로 곡을 썼다. 그분도 나중엔 당황하셔서 ‘더 이상 가르쳐드릴 게 없다’라고 말하면서 레이블을 소개해주려고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감정이 폭발하면서 발인이 끝나고 집에 오고부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1집의) 데모 음원들을 바로 만들어갔다. 데모 음원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해야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었던 여러 음반에 적혀있는 곽은정 엔지니어의 이름을 발견한 후 무턱대고 연락했다. 곽 엔지니어는 내 노래를 듣고서 좋게 봐주셨고, 진짜 아티스트로 봐주셨기에 이후 함께 일하게 됐다. 사실 그 당시의 데모는 초짜가 만든 것이었기에 표현하려는 것만 있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이분은 “너 재미있다. 천재인데?”라고 말해주셨다. 너무 운이 좋게 훌륭한 엔지니어를 만나서 1집이 그럴듯한 결과물로 나왔던 것 같다. 지금도 항상 이 음반은 곽 엔지니어님이 해주신 덕분이라고 말한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도 믹스된 음원을 듣자마자 “이 사람 누구냐”라고 하면서 녹음실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그렇게 마스터링 엔지니어님께는 이후 더 많이 배워서 이후 앨범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활동명을 ‘카코포니(cacophony: 불협화음)’라고 정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카코포니: 실제로 내가 불협화음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화성학은 모른 상태에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건반으로 화음을 잡아봤을 뿐인데, 주변에서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 그걸 듣고 놀라면서 ‘저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잡은 화음들이었는데 그게 불협화음이었던 거고, 그분들도 (내 음악에서) 그게 매력이라고 말해주시면서 내가 이런 화음을 많이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조화롭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인생 자체가 불협화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성학은 잘 모르지만 모든 화음에는 다 이름(Cm7 같은 코드명)이 있는데, 불협화음에는 어떤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어 활동명 자체를 ‘카코포니’라고 지어 이름 없는 것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매번 음반을 낼 때마다 확실하게 음반에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곡 작업을 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각 작품의 흐름을 이어서 보면 결국엔 ‘인간 김민경’, 아니면 ‘뮤지션 카코포니의 성장기’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인터뷰에서 음악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상당히 ‘직관적’이라고 밝혀왔는데, 이런 앨범 콘셉트의 설정은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카코포니: 1집을 냈을 때부터 뭔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하나의 앨범 속에서도 서사를 생각하면서 음악을 만들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앨범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이어서 읽으면 좀 더 감동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1집 때 인터뷰를 돌아보면 ‘3집, 4집까지 (주제를)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때 생각한 방향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작과 후속작 사이의 서사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염두에 두면서 작업하는 뮤지션은 맞는 것 같다. 

이번 앨범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곡, 또는 완성도 면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곡들이 있다면 각 앨범 당 하나씩만 골라 줄 수 있을까? 그 이유와 함께.
카코포니: 1집에서는 역시 ‘숨’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앨범에서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곡이었고, 타이틀로 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이런 곡을 좋아할 거라고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이 곡을 듣고 매우 좋아하면서 ‘이거 뮤직비디오 찍어야 해.’라고 해서 발매 후에야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신기한 것은 이 곡은 원테이크 녹음이었고, 뮤직비디오 역시 원테이크로 촬영하고 스튜디오 사용 시간이 다 되어 촬영본을 보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그 영상이 그대로 뮤직비디오로 완성되었다. 작곡부터 뮤비까지 마법처럼 모든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이 곡을 내 대표곡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서 의미가 크다. 2집에서는 2곡을 뽑고 싶은데, 먼저 ‘귀환’을 고르고 싶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이고, 내가 봐도 잘 만든 것 같다. (웃음) 1집 때와 같은 피아니스트가 세션을 해주셨고, 그분이 열심히 작업을 해주셨다. 내 장점이 두드러진 노래여서 매우 재미있게 작업했으며, 음악적으로도 보컬로도 잘 된 곡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는 ‘Parallel World’인데, 앨범의 전체 주제에 대한 요약이기도 하면서 내가 계속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담긴 곡이라 생각해서다. 우리는 계속 사람들과 이별하고 떠나보내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버텨야 할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평행세계에서는 우리는 만날 수도 있어’라는 생각 자체가 나를 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의 공연에서도 계속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름답고 이상한 위로 같은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Reborn] EP에서는 ‘저주’를 고르고 싶다. 노래가 어둡지만 폭발적이고,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쾌감이 아주 좋다. 최근 공연에서도 가장 신나게 불렀고, 관객들도 이 곡이 좋았다고 반응해주셨다. 곡에서 표현했던 분노하는 감정, 무력함을 내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에 참여해준 분들이 더 좋아해 주셨던 것 같다.

 


데뷔 앨범 이후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뮤직비디오로 영상적 표현과 함께 전달하고, 공연에서도 단순히 관객에게 노래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종합 예술적 무대로 구현하고 있다. 특히 [Reborn]은 한 편의 단편 영화로 만들어 공개했었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는 이유는 왜일까?
카코포니: 좋은 방식으로 다시 올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멈춰진 상황이다.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맞는 걸까 생각도 했고, 어디서 상영회를 해야 하는 건가... 생각만 많다가 해결 방안이 정해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곡의 전달에서 이처럼 영상, 시각적 요소를 결합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카코포니: 사실 처음에는 음악을 처음 하는 처지에서 그걸 처음부터 계획할 준비가 된 건 아니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 가장 친했던 사람들이 비주얼 작업을 하는 분들이었다. 내 노래를 듣고 본인들이 더 신나서 “이 곡은 이렇게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한다”라고 권유했다. 그들이 먼저 제안한 덕분에 별생각 없이, 제작비도 생각보다 크게 들지 않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카메라 앞에 선 내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도, 카메라 앞에 섰을 때도 그 자체가 자연스럽고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촬영하는 사람들도 그걸 느끼게 되니까 더 재미있는 판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태 발표되었던 영상 중에서 White나 ‘Sick Boy’ 등은 처음 봤을 때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번 앨범과 관련된 이미지들도 ‘육체’를 의도적으로 예술적으로 드러낸 것들이 종종 보인다.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적 표현 방식으로서의 ‘몸’의 의미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카코포니: 나는 우선 타인들과 달리 벗은 것에 대해 수치심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음반에서도 그런 이미지를 활용했고, 이전 뮤직비디오에서도 활용했다. 사람들도 그것들을 보고 야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기에 육체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게 내게 너무 자연스러운 내 표현 방식이 된 것 같다. 물론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반소매 티도 민소매 형태의 옷도 입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만약 이런 이미지를 보며 오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폴 댄스를 하면서 자기 몸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면서 더 해방감도 느껴졌다. 과거에 움츠러들었던 자기 모습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 같다.

 

( 카코포니, 음악을 만들며 트라우마를 응시할 용기와 극복의 길을 찾아가는 싱어송라이터 (Part 2)는 이 링크를 클릭! )